본문 바로가기

연구 자료/러시아 연극 자료

꿈과 환상의 세계 - <러시아 국립 중앙 인형극장>


  기축(己丑)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나라보다 정확히 여섯 시간 늦게 신년을 맞이한 모스크바에서는 정초부터 열흘 가까이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다. 흔히 러시아인들이 ‘카톨릭식 크리스마스’라 일컫는 우리의 성탄절과 달리, 이곳은 양력 1월 7일이 크리스마스인지라 붉은 옷의 산타들이 거리 곳곳에서 성탄 메시지를 전하며 신년의 정경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특히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극장을 방문하는데, 유독 연령에 상관없이 성황을 이루는 곳이 있으니 바로 <오브라즈초프 명칭 국립 아카데미 중앙 인형극장>(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Центральный театр кукол имени С.В. Образцова-이하 중앙 인형극장)이라 하겠다. 볼쇼이 극장을 비롯하여 트레티야코프스키 미술관, 크레믈린 박물관과 나란히 수도 모스크바를 문화 예술의 본고장으로 견인하는 중앙 인형극장은 수세기에 걸친 러시아 인형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다. 아울러 오늘날에는 비단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인형극의 ‘메카’로 칭송받기도 한다. 이미 우리나라를 수차례 방문해 <호두까기 인형> 등을 상연한바 있어, 보다 친숙하게 다가오는 중앙 인형극장. 그러기에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일상과의 평행과 교차 속에서 우리 삶의 진면목을 찾아주는 그들의 인형극 세계가 낯설지만은 않다. 필자는 <우먼 라이프>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할여해 준 보리스 골도프스키 예술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지 독자들을 환상과 꿈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다.


꿈을 실은 인형들의 천국-오브라즈초프 중앙 인형극장

  연극이 인간의 삶에 부족한 부분을 충만 시킨다면, 인형은 그 부족한 삶의 공간에서 유영한다. 중앙 인형극장의 무대에서라면 이러한 공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인형극이 예술장르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선지도 벌써 한 세기가 지난 터라, 러시아에서는 무대예술을 논할 때 결코 인형극 장르를 빠트릴 수 없다. 특히 중앙 인형극장은 뮤지컬과 합창, 마임 등 총체적 무대행위를 인형을 통해 구사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하루에도 수차례에 걸쳐 공연을 상연할 정도로 그들의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특이한 점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위한 인형극도 극장의 정규 레퍼토리 안에 들어있다는 것.

  1931년 모스크바에서 개관된 중앙 인형극장은 오늘날에도 단연 ‘인형극=중앙 인형극장’이라는 등식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75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 인형극장은 세르게이 오브라즈초프의 공헌으로 이루어진 마치 마법의 성(?)과도 같은 존재다. 

  극장에 가까워지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전면 벽에 걸린 시계. 대략 성인 두 명의 키 높이에 달하는 이 거대한 시계는 여러 동물들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재미있는 점은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옴직한 ‘타임머신’과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필자를 반긴 것은 연기자들의 대본 통독이었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5층 극장장실로 이동하는 내내 이 소리는 회랑에서 우렁차게 울렸는데, 때로는 아동의 음색으로, 때로는 할머니의 음색으로 순식간에 변색하는 것이 변화무쌍한 인형극의 묘미를 실감나게 느끼게 해주었다.

  극장장실에서는 현 극장의 예술 감독인 보리스 골도프스키(B.goldovskij)가 새로운 작품을 저술 중에 있었다. 두 손 꼭 쥐며 반갑게 맞이해 준 그의 얼굴에는 지난 세월의 노고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듯하였다. “한국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나라입니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전해준 곳이기도 하죠. 아마도 오브라즈초프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분명 한국에서의 상연을 동경했을 겁니다.” 지난 수년간 한국을 방문해온 오브라즈초프 극단을 대표하여 골도프스키 예술 감독은 한국에 대한 여러 가지 인상을 전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점으로 한국배우들과의 공동상연을 꼽았다. “그 때의 인상이 너무나 깊어 아직까지 우리 극장 박물관에는 한국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점은 한국배우들과 협업을 통해 함께 상연했던 부분이죠. 인형을 통한 인간의 재조명에 일생을 바친 오브라즈초프 선생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무대에서 발산된 에너지가 객석으로 전해진 후, 그 에너지가 다시 무대로 순환되어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조화의 미가 창조 된다’고 언급하며 골도프스키 예술 감독은 동양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을 법한 ‘윤회’(輪回)를 상기시키게 했다. “일반인들이 잘 납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형이 창조되기 까지는 많은 미학적 담론이 오갑니다. 특히 그 나라의 자연환경과 정서, 문화 등 인간을 둘러싼 모든 부분이 인형 창조에 영향을 미치죠. 심지어 물과 공기, 토양마저도 우리에게는 예술창조의 도구로 쓰이죠.” 스승 오브라즈초프의 가르침에 따라 자연 속에서 인물과 역할을 창조하고자 했던 골도프스키 감독은 인간을 둘러싼 주변 환경 모든 부분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지만 하나의 창조물로서 인형이 태어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신년 레퍼토리를 설명해 주며 인형극 미학을 설파하던 그가 주목한 작품은 <작은 비극>, <술탄 황제에 관한 이야기>, <알라딘의 요술램프>, <크리스마스 전야> 등이었다. 이 작품 가운데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하여 재창조의 과정을 거친 몇몇 작품들이 유독 눈에 띄는데, 특히 초연으로 상연되는 <걸리버 여행기>와 기록적인 작품인 <유별난 콘서트>는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스위프트의 작품은 책을 통해서만 감흥을 주지만, 우리가 상연하는 <걸리버 여행기>는 눈과 귀, 마음의 창 모든 부분을 열고 함께 참여하는데 더욱 의의가 있다 볼 수 있죠.” 문학 텍스트의 감흥과는 사뭇 다르지만 성인들에게도 새로운 환상의 장을 열어 보이는 <걸리버 여행기>에 대해 설명하며 그는 ‘우리에게 있어 모든 관객이 거인이자 소인입니다’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러시아 인형극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골도프스키 자신이 대본을 준비하고, 한국을 방문하여 <호두까기 인형>을 상연했던 경험이 있는 여러 연출가들이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여기에 50여명이 넘는 인형 배우들이 등장하는, 마치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보듯 그 스케일이 방대하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기꺼이 상연하겠다는 골도프스키 감독의 말에 우리의 아동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    

 

오브라즈초프와 <유별난 콘서트>

  오늘날 러시아 인형극이 세계적 명성을 얻은 데는 여러 선구자들의 공이 컸다. 그 중 최고의 공로자를 뽑자면 단연 오브라즈초프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만큼 러시아 인형극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세르게이 오브라즈초프(S.Obrazchov)이다. 사실주의 연극이 성행하던 시절 새로운 분야의 개척자로서 활동했던 그는 1901년 제정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철도학자인 아버지와 교육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분야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미술과 회화 분야에 탁월했던 그가 이후 <유별난 콘서트>를 통해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독창적인 인형극 무대를 창조했던 일화는 상호 연관성이 적지 않다. <인형극 배우>(1938), <나의 직업>(1950) 등 여러 편의 저작에서도 나타난 바, 러시아 인형극 예술은 이론과 기술 어느 측면에서도 그의 조명 아래 놓여있지 않은 것이 없다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그의 활동에 힘입어 중앙 인형극장은 1949년 중국으로의 첫 여행을 기점으로 스페인과 독일, 영국 등 50여 개국이 넘는 나라들로 끊임없는 해외순회공연을 실시하였다. 그 노정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도 21세기 중앙 인형극장의 절친한 동반자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던 <유별난 콘서트>는 <걸리버 여행기>와 더불어 가장 성황리에 있는 작품으로 오브라즈초프가 직접 연출과 무대감독을 맡았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공연사 또한 유구하여 초연 된지 벌써 반세기가 넘어가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 전역의 100여 곳이 넘는 도시에서 상연되었으며, 해외 50여 개국에서 상연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인형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가수와 안무가, 악사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을 패러디한 내용으로서 중앙 인형극장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장르 자체에 대한 조소라기보다는 조야한 미(美)와 저속한 속물근성을 향한 조소’라 언급했던 오브라즈초프의 지적을 상기해보면,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가 결코 아동들만을 유쾌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님이 여실히 증명된다.

  비록 오브라즈초프 선생은 새로운 세기를 보지 못하고 지난 20세기 말에 잠들었지만 연극을 향한 그의 열정만큼은 아직도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다.


범인류(汎人類)를 지향하는 인형극 예술

  여러 인형극 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을 추론하자면, 인형극은 무엇보다 ‘무대 활동’에 제한을 받는 장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세세한 표정과 행동을 인형 혹은 그 조종자가 구연하기에는 한두 가지 무리가 따르는 것이 아니리라. 이러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 인형을 ‘제한성을 가진 배우’라 표현한 A. 페도토프(A. Fedotov)의 이론도 동의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 때 많은 부분이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러 가지 기술적 요인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연극을 위해서는 언제나 모든 요소들을 응집해야만 합니다.” 분명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낼 수는 없지만 인형을 통해 대변되는 우리의 모습을 보다 호소력 있게 전하고자하는 중앙 인형극장 단원들의 마음가짐을 골도프스키 감독은 이처럼 표현하였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배신과 질투, 조롱과 같은 사악한 본성을 우리는 인형을 통해 내던집니다. 무대에서 타오른 사악한 본성은 관객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이러한 정화의 과정을 통해 관객은 보다 선량한 모습으로 일상에 회귀하지요.”

  더러는 인간성을 찾아가는 구도자로서, 더러는 현실을 꿈과 환상으로 확장시켜주는 마법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인간을 향한 애정이 진하게 녹아났다. 직접 출구까지 배웅해주는 노신사의 배려에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끼며 극장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