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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화

두 명의 빅토르 두 명의 빅토르 (The Two Viktors) 러시아의 두 영웅, 빅토르 최와 빅토르 안을 말하다 백야를 기다리며 부쩍 길어진 해는 6월의 페테르부르크를 더욱 빛나게 물들이고 있었고, 파릇한 잎사귀에는 사이사이마다 싱그러움이 넘쳐났다. 밤늦게까지 지칠 줄 모르던 어느 카페의 흥겨움은 네바 강변에 새벽이 도래해서야 고요를 찾았으며 문틈으로 새어나올 정도로 뜨겁던 열기는 늘어진 그림자 아래서 잠깐의 휴식을 맞이한다. 온 밤을 무대 위에서 신들린 듯 연주하며 노래하던 한 사람, 검은 머리칼에 검은 가죽점퍼를 걸친 동양인 얼굴의 키 큰 사내는 이곳저곳 얼룩진 스티커들로 도배된 낡은 기타를 말없이 내려놓고 자신의 노래에 갈채를 보내던 한 무리의 젊은 군속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아, 빅토르. 빅토르 최(Vikto.. 더보기
겨울 밖의 이색 러시아 겨울 밖의 이색 러시아 러시아 남부 도시, 크라스노다르 우리의 상상 속에 혹은 기억 속에 러시아란 어떤 나라로 각인되고 있을까? 둥근 테두리의 검은 색 모피 모자를 쓰고 뻣뻣하고도 짙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들이 두터운 가죽장화를 신고 발을 구르며 민속춤을 추는 곳? 또는 혹독하리만치 추운 날씨로 양 볼이 빨갛게 상기된 여인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채 전통에 따라 빵과 소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 곳? 그것도 아니라면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설원 속에 엄숙하고도 차분한 새벽의 정적을 뚫고 맑은 연기를 뿜으며 곧장이라도 의사 지바고의 ‘유리아틴’으로 향할 듯 기적을 울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활기찬 전경? 그렇다. 어느 하나 틀림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이 눈꽃 가득한 겨울 러시아를 대표하는 상징과.. 더보기
러시아 2012년 공연 소식(1) 러시아, 2012시즌의 막을 올리다! 글·사진 박정곤 2012년의 시작을 알린 크렘린의 종소리가 채 울림을 마치기도 전에 러시아의 공연 시즌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얼마 전 재건축을 마치고 오랜 잠에서 깨어 난 볼쇼이 극장을 비롯하여 창단 80주년을 맞이한 국립 오브라초프 중앙 인형극장, 새로운 레퍼토리로 2012년 시즌의 문을 연 모스크바 예술극장(MAT)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공연 예술계는 살을 에는 시베리아의 강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이들 대표 극장들의 신년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2012년 시즌의 새로운 도약 - 볼쇼이 극장 2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볼쇼이 극장이 장장 5년에 걸친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하 공연장을 비롯하여 일곱 층의 관객석에, 또 .. 더보기
초원의 전사들 - 칼미키야 공화국 유럽 대륙의 몽골리언 러시아 초원에 푸근한 바람이 분다. 지평선까지 뻗은 누런 황금 들녘은 사각이던 소리를 쉬이 죽이며 기름진 흑토에 서서히 눕는가 싶더니, 바람이 잦아지자 금세 다시 머리를 꼿꼿이 세우며 카랑카랑 살아있음을 알린다. 유럽 속 아시아, 아니 아시아의 변방을 지키는 수호자라 해야 더 걸맞을 칼미크(Kalmik)인들이 사는 곳, 칼미키야(Kalmikiya) 공화국. 이곳은 한 나라 안에서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 될 만큼 장대한 러시아 대륙의 유럽지대에 엄연히 위치하고 있지만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몽골 대초원을 연상케 한다. 일찍이 칼미키야는 칭기즈칸이 유럽대륙을 정복하며 천하통일을 노릴 때 이미 몽골리언에게 예고되었던 땅이었으며, 그의 일족들이 카스피 해로 이동하여 건설한, 그야 말로 기마족.. 더보기
볼가를 따라 거닐다 - 아스트라한 볼가 강의 종착역을 찾다 러시아 을 가다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어머니 볼가. 러시아인들은 대게 볼가(Volga)강을 이렇게 부른다. 그 시작은 모스크바 북쪽의 여린 물줄기들에서 비롯되나 카스피 해(Caspian sea)를 마주하는 하구에서는 가히 망망대해처럼 드넓은 러시아의 젖줄, 볼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가운데 하나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강인 볼가는 러시아 서부를 유유히 가로지르며 때로는 전쟁과 원정으로 얼룩진 질곡의 역사 속에, 때로는 산업화의 이동수단이자 정신적 동력으로서 말없이 제 몫을 지켜왔다. 예컨대 흐르는 강은 말이 없다 했던가. 9월까지 이어진 폭염 속에 볼가 강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아스트라한(Astrakhan)은 뙤약볕을 피해 강변을 찾아든 인파들로 여전히 붐볐다. 강을 끼고 .. 더보기
레프 톨스토이와 그의 박물관 러시아 문학의 유산(1) 레프 톨스토이 박물관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백야의 계절 6월이 어느덧 찾아왔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터라 5월 말부터 찾아 온 봄기운이 이곳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는 더없이 반갑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이곳에선 고작 4개월여 밖에 되지 않는 터라 이때가 아니면 생명의 태동과 수풀의 우거짐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숲의 나라 러시아. 그리고 국토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숲을 사랑한 문호들. 지난 세기 러시아의 문호들은 바로 이 6월의 백야 아래 숲과 삶과 예술을 논하였다. 특히 19세기 러시아는 그야말로 문학의 황금기였다 할 수 있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최고봉이자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푸슈킨에서부터 사실주의의 거장 톨스토이와 .. 더보기
러시아 카프카스 산맥을 거닐다 글-박정곤 3월의 카프카스(Caucasia)는 봄을 맞이하는 길목에 서 있다. 러시아에서는 3월이라 하여도 대부분의 지역이 영하권에 머무르고 있어 어느 곳이나 눈을 밟지 않고는 이동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남부 카프카스 지방은 이미 초록이 움 솟고 있어 그 풍경이 가히 봄이라 하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사계절의 옷을 모두 준비하지 않으면 산을 오르내리기 어려울 만큼 그 계절적 색채가 다채롭다. 실례로, 연중 한 번도 눈을 구경 하기 힘든 체겜(Chegem)과 같은 중부 산악지역이 있는 반면 1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있는 고산들도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으며, 또 3부 능선 아래 초원지대에는 찜통 같은 더위와 냉랭한 눈보라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있으니 또렷이 대비되는 지구의 계절변화가.. 더보기
모스크바 유고 자파트 극장 변방에서 중심으로 -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백야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은 러시아인들에게 꿈과 같은 계절이다. 자정너머까지 지지 않는 해로 인해 더러는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쾌청한 날씨 아래 산책을 즐기기도 또 가족들과 인근 숲을 찾아 바비큐 파티를 열수도 있기 때문에 진정 놓치기 아까운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아이들과 함께 예술가들의 생가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보기도 하거나 화려한 야외 공연을 감상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6월은 더욱 뜻 깊은 계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스크바는 굳이 시내 중심가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도시 여기저기에 숨겨진 볼거리와 이색 박물관, 극장들이 즐비해 있으니 이 보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진 도시도 전체 유럽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가운데 모스크.. 더보기
툰드라를 향한 폴라 익스프레스 러시아 글·박정곤 러시아를 한번이라도 여행해 본 경험이 있다면 혹은 눈밭의 자작나무 숲에 발을 디디고자 노력했던 이라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낭만과 동경을 아니 그리지 못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장장 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길을 일주야에 걸쳐 달음질하다보면 이제까지 걸어왔던 인생여정을 다시금 되뇌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횡단열차만이 러시아의 전부는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모스크바를 종착으로 하는, 이른 바 동과 서를 잇는 장중한 횡단열차가 있다면 러시아의 심장에서 북쪽 끝으로 연결되는 북방열차도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러시아 인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삶의 주요 교통수단이 되어 왔던 북방 열차. 모스크바 북쪽으로 즐비한 고도 야로슬라블과 볼로그.. 더보기
모스크바 국립 타간카 극장 2011년 러시아 음악극의 재탄생 모스크바 국립 타간카 극장 글·박정곤 2011년 신묘년의 새해가 힘차게 떠올랐다. 다사다난했던 러시아에서도 행복한 한해를 기원하며 정초부터 많은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그 가운데 공연 연극계에도 2011년 시즌을 겨냥한 훌륭한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초연되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에서는 올해로 94세가 되는 거장 연출가 유리 류비모프(Urij Lyuvimov)가 야심작으로 내어놓은 국립 타간카 극장(Teatr na Taganke)의 음악극들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천년 만에 찾아온 동장군의 기세도 떨칠법한 그들의 음악극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모스크바 타간카 극장과 유리 류비모프 1964년 바흐탄고프 스튜디오의 명배우였던 유리 류비모프는 슈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