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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료/러시아 연극 자료

러시아 발레의 자존심 <에스메랄다> - 러시아 국립 크레믈린 발레단 내한 공연

 

우리에게 친숙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지젤>에서부터 <돈키호테>, <톰 소여>, <신데렐라> 등에 이르기까지 당대 러시아 최고의 발레를 선보이는 국립 크레믈린 발레단의 공연이 드디어 우리에게 선보여진다. 다름 아닌 모스크바 공연예술계의 거장이자 발레 마이스터인 안드레이 페트로프(A. Petrov) 예술 감독의 야심작 <에스메랄다>가 제3회 세계 국립극장 페스티벌 해외초청작으로 10월 8일부터 10월 10일까지 장장 3일에 걸쳐 해오름 극장에서 공연되기 때문이다. 그간 <노트르담 드 파리>로 잘 알려졌던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의 비극적 일화를 발레 선율을 통해 무대에서 새롭게 탄생시킨 페트로프 예술 감독의 신작발레 <에스메랄다>는 <피가로>와 더불어 새천년을 향한 크레믈린 발레단의 가장 각광받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이다. 동토의 시베리아를 건너 우리에게 다가온 <에스메랄다>가 전해주는 신선하고도 설레는 느낌을 미리 한번 감상해보자. 


모스크바의 심장 크레믈린 궁과 예술의 중심 크레믈린 극장

모스크바의 10월은 어느 때 보다 분주하다. 이유인 즉, 9월부터 정규 공연시즌이 시작되지만 대부분의 극장들이 시원한 가을바람을 타고 본격적으로 상연의 기치를 선명히 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계절은 있지만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다시 말해 비교적 짧은 가을 동안 공연을 즐기고자 하는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10월은 더없이 소중한 계절이라 하겠다. 이러한 계절적 기운의 중심에 크레믈린 궁이 서 있다. 모스크바에 크레믈린 궁이 자리한 것은 이미 수 세기 전의 일이다. 1147년 유리 돌고루키(U. Dolgorukiy)1) 왕자가 모스크바에 공국을 건설하며 고도 키예프에서 많은 이들이 모스크바로 이주해 왔는데, 바로 모스크바가 성립된 직후인 1150년대부터 크레믈린은 목재로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240년부터 시작되어 약 240여 년간 지속된 몽고의 침략으로 인해 크레믈린은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타 소실되어 버렸으며, 이후 돌로 다시 짓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모습에 초석이 되었다.

현재 궁전 내부에는 대통령이 집무하는 대통령실과 각종 공공기관들, 그리고 정교회 교회들이 있으며, 황제의 대포, 황제의 종과 같은 거대 유적들이 궁전의 정원에 아직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990년에 이르러 이곳 정원 한편에 조금은 딱딱하게 생겼지만 6000천여 석에 달하는 규모의 당대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던 극장이 세워졌는데, 이곳이 바로 현재의 국립 크레믈린 극장(Театр "Кремлевскийбалет")이다. 저녁 6시부터는 이곳 크레믈린 궁의 긴 성벽을 따라 수백 미터의 행렬이 이어지는데, 바로 이곳 크레믈린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수 시간 전부터 기다리는 관객들의 줄서기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극장은 활발한 해외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데,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등의 서유럽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거쳐 26개국에 달하는 곳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금번 시즌에는 바쁜 순회공연 일정과 극장 리모델링으로 인해 <에스메랄다>의 한국 공연 이후에 다시 개관할 예정이라 한다.

  

러시아 발레의 산증인 - 예술 감독 안드레이 페트로프

이처럼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크레믈린 발레단이지만 그 역사가 처음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러시아 발레를 떠올리면 흔히 모스크바의 볼쇼이와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 거대극장 가운데 유독 크레믈린 극장은 소비에트에서 러시아로 전환된 격동의 1990년대의 질곡에 찬 역사와 함께 해왔다 할 수 있다. 통상 크레믈린 발레단은 창단 이후 줄곧 볼쇼이 발레단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기실 페트로프 예술 감독이 28년 동안 볼쇼이 극장에서 활동해왔음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의 발단은 여기에서 출발하였다.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크레믈린 발레단의 대부분의 단원들은 볼쇼이 발레단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부재로 크레믈린 발레단은 소멸될 위기에 처하기까지 하였다. 심지어 페트로프 감독은 새로이 발레단을 설립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하기까지도 하였다.

그러나 페트로프 감독은 흔들림 없이 발레단의 존폐의 중심에 서서 명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발레리나가 없이 발레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극장을 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공연이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죽음과도 같은 일이니까요.” 그 결과 현재까지 수십여 편에 달하는 발레 작품을 그는 선보이게 되었으며, 무려 20년이란 세월이 찬란한 역사 속에 흐르게 된 것이다. 실례로, 1990년 설립과 동시에 <멕베드>를 상연하였으며, 1992년에는 <루슬란과 루드밀라>, 1994년에는 <돈키호테>를, 이후에는 <백조의 호수>와 <톰 소여>, <로미오와 줄리엣>, <지젤>에 이어 2008년에 <피가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성격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현존하는 러시아 발레 마이스터 출신 예술 감독 가운데 크레믈린 극장의 안드레이 페트로프 예술 감독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1990년 크레믈린 극장의 창립자이자 현 예술 감독이기도 한 그는 <에스메랄다>의 한국 공연에 앞서 현대 발레와 고전 발레 사이의 장벽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현대 발레를 발전시키려면 반드시 고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형식과 경향의 춤의 인생을 열기 위해서는 고전을 반드시 알아야한다는 것이죠. 고전 속에는 추상적이지만 철학적인 내용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에스메랄다>의 상연을 위해 위고의 원작에서부터 페로의 발레 작품, 그리고 페티프의 개작과 1930-40년대 러시아 안무가들의 <에스메랄다>에 달하기까지 모든 작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양식이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완전히 고유한 색을 발하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그는 한국을 방문했었던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의 예술문화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인상이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특히 현대무용과 한국 고유의 고전무용, 그리고 민속춤이 한데 어우러져 다양한 장르가 상호 융화되는 것 같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처럼 관객에게 다양한 장르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는 예술인들에게는 한국과 같이 다양함 속에 정통성이 꿰뚫고 있는 맥(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크레믈린 발레단은 반드시 고전에 바탕을 둔 현대를 지향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의 현대의 실험무용에 대한 평가자체는 긍정적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젊은 예술가들의 패기에 찬 도약과도 같이 그에게 다가온 깃이다.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을 결코 묵살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고전을 잘 익히고 그에 바탕을 둔 발레 에너지를 뿜어 낼 수 있도록 선배 예술가들은 올바르게 이끌어야 합니다. 저의 <에스메랄다>가 그 전범이 되고자 합니다”라고 그는 힘주어 덧붙였다. 


거장의 선택 - 발레 <에스메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발레 <에스메랄다>는 쥘 페로(J. Parrot)의 역작으로 원전은 영국의 런던에서 출발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안무가 마리우스 페티프(M. Petip)의 손을 거쳐 지금의 크레믈린에서 상연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의 해석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크레믈린 발레단의 <에스메랄다>는 예술 감독 페트로프가 선별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신체언어로 재해석한 독보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특히 지금의 <에스메랄다>는 2006년에 페트로프에 의해 재창조된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유리 그리고로비치(U. Grigorovich)와 같은 러시아 대안무가의 맥을 잇고 있다.

“글린카의 <호두까기 인형>, <루슬란과 루드밀라>는 이미 200년 이상 된 고전 작품이지요. 물론 한국 관객들에게도 <백조에 호수>와 더불어 가장 사랑받는 작품일 것입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도 결코 빠뜨릴 수 없이 훌륭합니다. 이 가운데 몇 작품을 선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을 고르라면 단연 <에스메랄다>이지요.”

주지하다시피, 최근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는 발레 <피가로>를 비롯하여 몇몇 작품으로 축약되는데, 그 가운데 특히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에스메랄다>라고 한다. 러시아에서도 가장 촉망받는 발레 안무가이인 크리스티나 크레토바(K. Kretova)와 잔나 보고로디츠카야(J. Bogorodizhkaya), 스베틀라나 로마노바(S. Romanova)와 알렉산드라 티모페예브나(A. Timofeevna), 드미트리 알타마레 등이 <에스메랄다>의 상연에 참여하고 있는데, 한국 공연에서는 위의 연기자들과 미하일 마르트이뉴크, 키릴 예르몰렌코 등의 솔리스트들이 호흡을 맞춰 수준 높은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다가올 한국공연을 두고 페트로프는 “발레작품은 신체언어인 만큼 어떠한 해석이나 통역자가 필요 없는 작품이죠. 다시 말해 관객들이 눈으로 접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관객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감동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수준 높은 관객들에게 우리의 <에스메랄다>는 분명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라고 전하였다. 그의 말처럼 발레는 어떠한 번역도 불필요하며 본질적으로 무대에서 직접 배우를 느낄 수 있는 장르이자 예술이다. 그 말은 곧 객석과 무대 사이가 공연시작과 함께 즉시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끝으로 페트로프 예술 감독은 우리나라의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인사를 전하고자 했다.: “세계의 다양한 문자와 다양한 관객이 한 대 어우러지고 무대 위 배우와 직접적인 호흡을 나눌 수 있는 발레 <에스메랄다>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