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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료/러시아 연극 자료

모스크바 국립 타간카 극장


2011년 러시아 음악극의 재탄생

모스크바 국립 타간카 극장


글·박정곤

2011년 신묘년의 새해가 힘차게 떠올랐다. 다사다난했던 러시아에서도 행복한 한해를 기원하며 정초부터 많은 이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다. 그 가운데 공연 연극계에도 2011년 시즌을 겨냥한 훌륭한 작품들이 여기저기서 초연되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에서는 올해로 94세가 되는 거장 연출가 유리 류비모프(Urij Lyuvimov)가 야심작으로 내어놓은 국립 타간카 극장(Teatr na Taganke)의 음악극들이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천년 만에 찾아온 동장군의 기세도 떨칠법한 그들의 음악극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자.


 

모스크바 타간카 극장과 유리 류비모프

1964년 바흐탄고프 스튜디오의 명배우였던 유리 류비모프는 슈킨 연극대학교의 교수로 부임한 이후 곧 모스크바 코메디 극장의 연출가로 지명된다. 그가 들어오면서 극장은 새로운 명칭과 레퍼토리를 얻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오늘날의 <타간카 극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슈킨 연극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공연하였던 브레히트의 <시츄안의 선인>을 초연하며 타간카 극장을 세간에 알리기 시작하였는데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무대에 오르고 있다.

배우가 아닌 전문 연출가로서 그는 A. 갈리치의 <많은 이들이 필요해>를 초연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타간카 극장에서 5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연출하였다. 10월 혁명과 함께 생을 시작한 그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기도 하였으며 소비에트에 반기를 들어 한때 여권을 상실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연극을 향한 열정으로 매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였으니 그가 연출하였던 수많은 작품들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백수를 바라보는 그는 지금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동그란 손전등을 하나 들고 직접 무대 앞에서 연기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만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밀라노, 일본의 몇몇 도시들을 거치며 마스터 클래스를 선보였는데 그의 배우로서의 경험과 연출가로서의 연륜은 세계정상의 배우와 연출가들도 고개 숙일 수밖에 없도록 하였다 한다. 특히 일본 연극의 명연출가 스즈키 타다시(Suzuki Tadashi)가 그의 배우들과 함께 <엘렉트라>를 상연하며 류비모프의 극단을 극찬하였으니 이는 그의 거장다움을 증명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음악극의 효시 <마라트와 마르키즈 드 사드>

2011년 1월 극장의 레퍼토리를 살펴보았을 때, 1977년 4월에 초연을 가져 현재까지 공연되어 오며 장장 1000회를 넘긴 전설적인 불가코프의 대작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비롯하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파스테르나크 원작의 <의사 지바고>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러시아의 민족 시인이라 불리는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은 끊임없이 사랑받는 사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음악적 성격이 강한 타간카 극장에는 정통 드라마를 제외하고서도 너무나도 훌륭한 음악극들이 산재해 있어 더욱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만든다. 러시아의 국보급 음유시인이자 명배우였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Bladimir Bysochkij)가 활동했던 극장인지라 음악적 성격은 태생부터 타고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극장의 대표적인 음악극을 뽑아보자면 <마라트와 마르키즈 드 사드>(이하 마라트와 마르키즈)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1998년 11월에 초연되었는데, 초연이 되자마자 러시아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0년대 말,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향해 급격한 흡수력을 보였던 러시아 공연예술계에 일침을 가한 <마라트와 마르키즈>는 러시아에서 흥행을 한 후 곧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품이 되었다. 작품의 배경에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주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장 폴 마라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바탕을 이룬다. 자칫 어두울 수 있는 줄거리를 류비모프는 보다 가볍게 끌어내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제공된 흥겨운 음악과 율동들은 관객에게 볼거리를 선사하였다. 그럼에도 특유의 브레히트식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동원하여 관객에게 교훈적인 면을 가볍지 않게 전달하는데, 그 기법적인 면만으로도 거장다운 면모를 상기시키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또한 색소폰과 드럼,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들의 생음악으로 연주되는 전체 멜로디는 재즈와 소울, 러시아 폴카 등으로 이어지며 때로는 관객들을 급류 속으로, 때로는 잔잔한 호수에 떠있듯 차분하게 진정시키기도 하며 더욱 작품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초연되었을 당시 연극제 <트라이엄프>에서 수상을 하였으며, 2000년에는 세계적인 연극 페스티벌인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도 하였다. 2011년에도 이 작품은 여전히 만석을 자랑하며 매진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달콤한 꿀과도 같은 인생 <묘드>

앞서 선보인 <마라트와 마르키즈>가 현란한 연기와 무게 있는 라이브 음악을 통해 삶을 반추하고 있다면, 이보다는 가볍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묘드>(Med)가 있다. 우리식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묘드는 '꿀'을 의미하는데 인생의 달콤함에 숨어든 칼날 같은 고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자 작가는 꿀이라는 제목을 명명하였다 한다.    

2010년 4월에 초연을 가진 이 작품은 류비모프 예술 감독과 동년배이자 오랜 친구인 이탈리아 출신 극작가이자 시인인 토니노 구에라(Tonio Guera)의 작품이다. 예술가로서,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감독이기도 한 구에라는 <그리고 전함은 떠가네>, <아마르코드>, <이탈리아식 결혼>, <노스탤지어> 등의 영화작품을 남겼는데, 그의 90세 생일을 기념하고자 러시아의 타간카 극장에서 올린 작품이 바로 <묘드>이다. 드라마의 대사는 전반적으로 구에라의 장시로 이어져 생동감 넘치는 운율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보컬과 율동에는 너무나도 이탈리아적인 냄새가 강하게 뿜어나는데, 류비모프는 여기에 러시아적 향취를 더해 한편의 완성된 작품을 관객에서 보여주었다. 여기에 개개 배우들은 바이올린과 첼로, 트럼펫 등의 악기를 직접 연주하기도 하며 관객들에게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어떠한 공연이든 무대 예술은 작품에 큰 영향을 미치기 마련인데 <묘드>에서는 구에라가 직접 창작한 미술품들, 즉 그의 모자이크 작품과 회화, 설치물이 무대 소품으로 활용되며 작품의 색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많은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두고 <바람의 노래> 혹은 <쓰고 달콤한 인생의 노래>라 일컫고 있으며, 다른 한 비평가는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보다 더 서정적인 음악극은 없을 것이라 단언하고 있다. 이처럼 <묘드>는 관객들을 물론 비평가들과 예술인 사이에 경계를 짓지 않고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춤과 음악, 연기의 하모니 - <아라베스크>

2011년 시즌 최고의 작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또 하나의 음악극 <아라베스크>는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고골 (Nikolai Gogol)의 생애와 창작에 관한 작품이다. 오랫동안 류비모프 예술 감독은 고골의 천재적인 창작능력과 철학, 사상에 관심을 보여 왔는데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일생을 무대화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류비모프에 의해 살아난 고골이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류비모프는 관객과 소통하며 무대와 객석이 이분화 되지 않은 전체 무대에서 조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와 함께 전통적인 드라마 예술 장르에 마리오네트의 기술을 도입하여 입체적이고 총체적인 무대효과를 살리고자 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류비모프는 하나의 무대에 세 개의 극장을 세웠는데, 그 하나는 파토스적인 고대 극장, 다른 하나는 예술적이면서도 세속적인 극장,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인형극장이다. 놀라운 사실은 개개의 극장은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무대에서 통일성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 고골의 작품은 무엇보다 그로테스크와 뛰어난 풍자, 극성으로 유명한데, 이와 같은 고골적인 특성을 류비모프는 최대한 살리고자 동시대인들의 회상과 기록에 바탕에 두고 연출 작업에 임했다 한다. 실례로 <아라베스크>에서 류비모프는 창작을 앞두고 고뇌하는 고골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나타내고자 당대 의상과 거리풍경을 비롯하여 고골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배우를 무대에 투입시켰다.    

<아라베스크>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객석에서 유희처럼 흔들어대는 연출가의 손전등에 따라 배우들은 더러는 하나가 되기도, 더러는 무대 양끝으로 갈라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류비모프의 독특한 연출기법이 되어버린 '손전등 기법'에 따라 배우들은 극중에도 연출가와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타간카 극장 무대에서 상연되는 이들 음악극이 있기에 올 한해도 모스크바 시민들의 눈과 귀는 언제나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