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구 자료/러시아 연극 자료

모스크바 예술극장(MXT/MXAT)

 


모스크바 예술극장(MXT)

체호프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며



경인(庚寅)년의 매서운 추위는 실로 대단했다. 최근 6년 만에 최저온도를 나타냈던 수도 서울의 수은주를 지켜본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으며, 열섬현상으로 덥혀진 도심 속 거리들은 냉기로 가득 찬 빙벽(氷壁)이 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오가는 행인들의 보행은 동장군의 심술에 온종일 잰걸음을 면치 못했으며, 설밑 제수 준비에 한창인 우리 어머니들의 손길도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여기에 밤사이 쉼 없이 내린 함박눈은 대한민국 전역을 새하얗게 뒤덮어 버렸으니 문호 야스나리(川端 康成)의 명작소설 '설국(雪國)'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심지어 비교적 온난한 기후가 유지되었던 남부 지방마저 올겨울엔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북풍의 기세에 맥을 추지 못하였는데, 급기야 '지구 온난화'란 말은 온데간데없어져 버리고 '2차 빙하기'란 말마저 세간에서 떠돌고 말았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제일의 설국인 러시아에서 한파(寒波)란 당연지사. 한겨울 내내 가시지 않는 냉기서린 북풍은 2월이 되면 더욱 거세게 몰아쳐 댄다. 그 덕분에 냉랭히 얼어붙은 거리를 나서다 보면 이내 백야의 뜨거운 뙤약볕이 그리워지기도 하며, 또 흑해의 시원한 파도와 백사장, 그리고 이글거리는 소치의 열대야가 먼발치 끝에 아롱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는 체호프 탄생 150주년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 세기 최고의 극작가로 칭송받는 안톤 체호프(Anton P. Chekhov)는 당대 러시아 연극의 흐름을 통째 바꾸어 놓았을 정도로 혁신적인 작품들을 창조해 내었다. 또한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러시아 연극계의 '거탑' 모스크바 예술 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Театр)의 존립도 불분명 하였을 것이다. 예술을 서열로 매긴다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기는 하나, 가히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수성(首星)의 자리를 잃지 않았던 러시아 대표극단이자 사실주의 연극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2월 나기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러시아 연극예술의 산실 - 모스크바 예술 극장

현대 러시아 연극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이하 예술극장)은 지난 2008년 시즌에 창단 110주년을 맞이하였다. 국내에서는 A.체호프(1860~1904)와 K.스타니슬라프스키, 그리고 ‘갈매기’ 문양이 새겨진 무대 장막으로 더 유명하기도 한데, 비단 이들 뿐만 아니라 극장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부분에서 대가다운 면모는 흘러넘친다. 실례로, 예술극단의 단장이자 당대 최고 연출가, 극작가였던 네미로비치-단첸코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대표 주자 V.메이에르홀드도 예술극장과 태생을 함께 하였으며, 러시아가 배출한 명연출가 A.타이로프와 E.바흐탄고프도 예술극장의 무대에서 빛을 발한 거장들이다. 오늘날에는 극장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 민중 예술가 올레그 타바코프(Oleg Tabakov-그는 영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도 출연했었다)가 그 유명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명문 극장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예술극장은 극작, 연출, 무대, 배우로 연결되는, 이른바 연극예술의 총체적인 속성들을 응축하여 인간의 심연 깊이 내재된 삶의 문제들을 무대 위에서 끌어낸다. 다양한 레퍼토리 속에서 인간의 오감을 꾸밈없이 자극하는 예술극장의 섬세한 분위기는 다른 극장들은 감히 범접하기조차 힘든 고유한 빛을 발산하는데, 이는 바로 선대 거장들의 숨결이 아직까지도 작품 속에 녹아나기 때문이라 하겠다.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설립은 앞서 말한 두 거장, 즉 연출가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와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블라디미르 네미로비치-단첸코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1897년 6월 19일 모스크바의 유명 레스토랑인 '슬라뱐스키 바자르'에서 그들이 가진 만남은 오늘날 예술극장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장장 열여덟 시간 동안 휴식도 없이 계속된 이 역사적인 만남의 결실로 1898년에 드디어 예술극장이 창립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14일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비극 <황제 표도르 이오아노비치>를 개관기념 공연으로 상연하였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체호프의 대작 <갈매기>(1898년 12월)와 후기 장막극들, 오스트로프스키와 고리키, 밤필로프로 이어지는 주옥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상연되고 있다.

예술극장의 최초의 명칭은 ‘모스크바 예술-대중 극장’이었다. 그러나 1901년 ‘대중’이란 칭호를 떼버리고 ‘모스크바 예술극장’이란 명칭으로 활동을 하다 현재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소비에트 초기였던 1919년에 예술극장은 국가로부터 ‘아카데믹 극장’(Academic Theatre)이란 칭호를 얻게 되지만 이는 오히려 극장의 분립을 초래하였다. 1970년대를 거쳐 소비에트 후기에 접어들면서 예술극장에서는 연출가 올레그 예프레모프를 축으로 한 구파와 명배우 타티아나 도로니나를 앞세운 신진 배우진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다름 아닌 극장의 전통적인 레퍼토리 고수와 새로운 희곡, 연극 기법의 도입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1987년에 이르러 예술극장은 결국 체호프 예술극장과 고리키 예술극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전통을 고수하는 고리키 예술극장만이 보다 학술적이고 전통적인 상연을 고수한다는 차원에서 아카데믹이란 칭호를 유지하고 있으며, 체호프 예술극장은 다양한 레퍼토리의 시도와 상업 연극의 수용으로 아카데믹에서 벗어났다.

비극적인 양대 극장의 갈림은 오늘날까지도 레퍼토리상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작품들을 주로 하는 체호프 예술극장은 무대사실주의에 보다 근접한 고리키 예술극장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으며, 예술극장이란 큰 테두리 속에서 추구되는 상이한 레퍼토리와 상연기법에서는 각각의 고유한 특색이 발휘되고 있다.


새로운 연극적 시도와 도약

체호프 예술극장의 2010년 2월 레퍼토리를 살펴보자면, A.체호프의 <갈매기>와 I.투르게네프의 <귀족의 둥지>, A.오스트로프스키의 <숲>, 표트르 예르쇼프의 <곱사등이 망아지>(the magic humpbacked horse)를 비롯한 러시아 작품들과 마이클 프레인의 <코펜하겐>, 제럴드 시블레이라스의 <알바트로스의 춤>,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 등 영미 희곡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가 다채롭다. 특히 예르쇼프의 뮤지컬 <곱사등이 망아지>는 레퍼토리의 대부분이 정극(正劇)인 예술극장으로선 획기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은 지난 시즌 '황금 마스크' 축제에서 오페레타, 음악극 부분 최우수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하였다. 이 외에도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밤필로프의 <오리사냥>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다양하고 실험적인 창작품들이 새로이 증설된 무대에서 상연되고 있다.

이와 마치 평행선을 이루듯 고리키 예술극장은 스타니슬라프스키 식으로 연출되는 사실주의 연출법을 이어가고 있으니, 메테를링크의 <파랑새>, 불가코프의 <백위군>, <거장과 마르가리타>, 고리키의 <밑바닥에서>, 체호프의 <벚나무 밭>을 레퍼토리로 하고 있다. 특히 <파랑새>는 1908년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끊임없이 관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으며, 한때 사실주의 연극이 아닌 '소비에트 연극'의 본산이라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아오던 고리키 예술극장의 자존심을 지켜준 대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현재의 고리키 예술극장은 소비에트 예술의 잔재가 아닌 사실주의적 전통성과 깊이 있는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극장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월에는 체호프의 <큰길에서>를 초연으로 상연하면서 작가의 150주년 탄생을 기념하고 있으며, 불가코프의 <조야의 아파트>, 밤필로프의 <6월의 이별>, 네크라소프와 솔로구프의 작품을 엮은 <러시아 보드빌>도 전처럼 상연하고 있다.

이처럼 체호프 예술극장이 새로운 연기술과 실험적 연출법을 개척해 나가며 해외 극작가들의 작품이나 최근 생성된 희곡들을 레퍼토리에 대거 포함하고 있다면, 고리키 예술극장은 전통적인 예술극장 레퍼토리에 중심을 맞추어 전통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상연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일한 작품을 상연함에도 두 극장은 차이를 보이며, 각각의 작품 속에는 다른 성격이 드러난다. 


체호프적 전통을 찾아서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국내 연극계에서도 체호프 극을 어떻게 수용할 것이냐는 문제는 커다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이다. 실례로 작가의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미 방방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상연대에 올랐다. 지난 1월에는 서울 아르코 극장에서 국내 배우들로 구성된 체호프의 <바냐 외삼촌>이 상연되었으며, 페테르부르크의 거장 레프 도진이 이끄는 말리 드라마 극장도 곧 동일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상연할 예정이다. 가을에는 <세 자매>와 <벚나무 밭>도 전국 각지에서 상연될 계획인데, 이처럼 국적을 막론하고 체호프에게 집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그 원류를 예술극장에서 찾고자 한다. 예술극장의 진정한 탄생은 체호프와 연출가, 배우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른바 극장과 극작가 사이에 맺어진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할 수 있다. 사설 아마추어 극단에서 출발하여 진정한 무대예술을 조국 러시아에 선보이고자했던 스타니슬라프스키에게 체호프의 작품은 거대한 충격이자 한 번도 디뎌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심지어 초기에 그는 체호프의 창작세계를 이해하기조차 못했다. 실례로 체호프는 늘 입버릇처럼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내 작품을 망쳐버렸소. 나는 희극을 썼는데 그는 비극처럼 연기를 하지요'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러한 체호프의 책망 아래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끊임없이 완성된 작품을 상연하고자 노력하였으며, 그 결과 주인공의 심리적 특수성을 전달하기 위한 배우 연기의 새로운 기법인, 이른바 '시스템(System)'이 탄생한 것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회고에서처럼, 체호프는 작품 속에서 외적인 진실과 내적인 진실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의사였던 그는 외형적 사건의 흐름을 마치 수술대에 선 외과 의사처럼 세밀히 서술하였으며, 모든 인간의 일상들은 끊임없는 기다림과 희망으로 지친 인간 정신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무대라는 거짓된 외형에 집착하는 공간 속에서 진실한 감정과 체험, 내면적인 정신을 창조하기란 어렵다. 더욱이 일상적인 탐색의 범주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체호프는 진정한 예술의 장인으로서 아름답고 예술적이고 올바른 진실을 창조함으로써 이러한 무대의 외적, 내적 거짓을 몰아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체호프는 인간의 일상에 숨겨진 내적인 의미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이러한 체호프 고유의 음색을 무대 위에서 재현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작가와 연출가, 그리고 관객들과 어우러진 하모니가 있었기에 체호프의 위대한 발견물은 150년 후의 우리세대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무대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라던 체호프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출처: 2010년 월간 <우먼 라이프> 2월 / 박정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