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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발트해의 가을

발트해의 가을 



어느 때보다 강한 추위가 예고되고 있는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벌써부터 월동준비가 한창이다. 우리의 상식에서는 손발이 시려오는 두려움의 계절일 수도 있겠으나 지난여름 동안 찜통 같은 더위와 대화재로 시달렸던 러시아인들에게 추위는 오히려 익숙한 옛 벗과도 같으리니. 그럼에도 혹자들의 말을 빌어보자면, 그 혹독함이 천년 만에 찾아오는 동(冬)장군이라 하니 이제는 당당히 추위와 맞붙어 보는 수밖에 없을 터이겠다.

이러한 러시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러시아 서북부에 자리한 발트 해(Балтийское море) 연안 3국에서는 해양성 기후와 대륙의 청명함이 빚어낸, 그야말로 예술적인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 유럽을 향한 창구로서 역할 했던 발트 해 연안 3국은 1991년 소비에트가 붕괴조짐을 보이면서 앞 다투어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들 국가는 다른 소비에트 국가들과는 달리 독립국가 연합(CIS)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고유한 제 모습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오늘날 발트 해 국가들은 유럽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데, 특히나 이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자리한 에스토니아는 세계최고의 복지국가로 거명되는 핀란드를 마주보며 가장 유럽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21세기의 급속한 경제 발전 아래 에스토니아는 고도성장을 보이면서도 중세의 향취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찾아오는 이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추억을 한껏 선사하고 있다. 하여 11월에 찾아든 청명한 에스토니아의 만추를 잠시 함께 느껴보고자 한다.



발트 해의 관문, 에스토니아

지정학 상으로 북유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는 남과 동으로는 라트비아, 러시아와 육상 국경을 두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발트 해 너머의 스웨덴과 국경을 두고 있다. 인접국가인 핀란드와는 북쪽의 핀란드만에서 경계를 이룬다. 국가의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스토니아어로는 Eesti Vabariik)으로서 수도는 고도(古都) 탈린(Tallinn)이다. 에스토니아는 1940년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1991년 혁명 이후에는 독립을 인정받았으나 독립국가연합(CIS)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에스토니아어를 공용어로 하는 이곳에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에스토니아인을 비롯하여 러시아인과 라트비아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소비에트 시절 이곳으로 이주한 우리의 재러 동포들도 적은 수이지만 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상점이나 식당을 경영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곳은 기원전 수세기 전부터 인류가 흔적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실례로 후기 빙하기인 1만 2천 년 전 인류가 산 증거물들이 곳곳에 산재되어있다 하니 실로 오랜 문명의 시간을 담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남(南)핀란드를 비롯하여 라트비아와도 유사한 문명이 토착하였던 이곳은 중세 시기 타르투(Tartu)와 탈린과 같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3세기에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가 이후에는 북부 독일과 발트 해 연안 국가들 사이에 이루어진 한자동맹에 가입하며 해로(海路)를 확보하기 시작하였는데, 비록 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으나 에스토니아가 발전하게 된 한 계기였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16세기에 이르러 에스토니아는 발트 해로 진출하고자했던 러시아의 차르 이반 4세의 침공으로 리보니아 전쟁에 휩싸이게 된다. 물론 전쟁에서 큰 소득을 얻지 못한 이반 4세의 군대는 곧 물러갔으나 여전히 스웨덴을 비롯한 외세의 영향 아래 놓일 수밖에 없었던 에스토니아는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지배하던 러시아에 결국 영토의 일부분을 넘겨주게 된다. 이후 소비에트에 편입되었다가 오늘날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앞서 말한 바처럼, 에스토니아는 역사적으로 주요 요충지였던 몇몇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할 수 있다. 실례로, 타르투는 5세기경 상주하는 시민들이 증가하여 시가지가 형성되며 만들어진 도시인데, 에스토니아인들이 이곳을 점령하게 된 시기는 11세기에 들어서이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도이기도 한 이곳은 탈린과 더불어 오늘날 국가를 대표하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또한 나르바(Narva)는 러시아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곳으로서 대러시아 교류의 중심지로 불린다. 빠르누(Parnu)는 에스토니아의 남서쪽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서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이동할 때 거처야만 하는 주요 교착지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휴양지이기도 한 이곳은 소비에트 시절 많은 관리들이 머물다 갔다고 한다. 이 외에도 발란디(Valandi)를 비롯한 군소도시들을 중심으로 에스토니아의 문화와 경제는 발달하였다. 이처럼 에스토니아 곳곳에는 제 각기 다른 기능을 하는 도시들이 산재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오늘날 수도로 성장한 곳이 바로 탈린이다.



중세의 흔적이 머무르는 곳 - 탈린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신경제 중심지이자 중세 유럽의 성곽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고도이기도 하다. 전체 유럽에서 가장 인터넷 망이 잘 구축된 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금융 결제와 선거, 의료, 우편 업무까지도 인터넷으로 거의 대부분 해결할 정도로 우수한 넷 망을 구축하고 있다. 한 때 러시아의 유명한 해커가 이곳을 해킹하여 도시 전체 업무가 마비 수준에 달할 정도였던 지난 수년 전의 사건은 오늘날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핀란드의 수도인 헬싱키에서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핀란드만 남쪽 해변에 자리한 탈린의 도시 명칭은 ‘덴마크의 도시’, ‘겨울 도시’, 혹은 ‘성’이라는 순수 에스토니아 단어에 유래를 둔다고 한다. 독특하게도 탈린은 서구 유럽의 학자가 아닌 1154년에 이곳을 방문한 아랍의 지질학자 ‘알 이드리시’에 의해 <요새를 닮은 작은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도시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탈린은 도시 건설 이후 외세로부터 오랜 지배를 받아왔다. 실제로 탈린의 역사는 에스토니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몇몇 시기로 구분되는데, 가령, 12세기경에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아왔으며, 15세기에는 한자동맹의 중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도시로 변모하였다. 이후 스웨덴의 지배와 중세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거쳐 해방전쟁을 통한 독립과 소비에트 복속, 그리고 탈 소비에트에까지 탈린은 그야말로 질곡의 역사를 거쳐 왔다.

그럼에도 탈린의 자연 경관은 가히 진경(珍景)이라 할 수 있다. 46킬로미터에 달하는 아름답고 긴 해안선에는 수려하기 그지없는 코플리와 팔랴사레, 카쿠먀에와 같은 섬들이 즐비해 있으며, 해안선 너머 낮은 언덕에 위치한 고성들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조화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낙엽이 뒹구는 탈린의 구 시가지는 어느새 시간을 중세 유럽으로 돌려놓았다. 노변에 세워진 차량들이 어색할 정도로 이곳은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재갈을 물린 삼두마차가 귀부인들을 태워 지나갈 듯하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대부분 11세기에서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전통적인 기법으로 보수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건축 양식의 성 올라파 성당과 니콜라이 교회는 전체 구 시가지를 잘 조율하고 있었으며,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을 받은 터라 양파 모양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사원의 아름답고 둥근 지붕들은 더욱 눈을 사로잡았다. 또한 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광장에는 해 지는 저녁의 적막함보다는 오히려 발트 해의 바다내음을 가득 머금은 신선한 공기와 돌길을 따라 걷는 연인들의 낭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광장 한 쪽 모퉁이에서는 중세 복장을 한 젊은 남녀가 지나는 행인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은 늦가을의 쓸쓸함을 잠식할 정도로 활기차 있었다. 이들이 살고 있는 한 탈린은 영원한 에스토니아의 얼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낸 조화로운 풍경 - 핀란드 만과 페리호

전체 국토의 상당 부분이 해안선을 끼고 있는 탓에 에스토니아에는 해상 교통로가 잘 발달되어 있다. 특히 핀란드와 스웨덴을 오가는 거대 유람선(Ferry)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승객들에게 마치 타이타닉에 승선한 듯한 묘한 기분을 갖게 만든다. 한 눈에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와 그 안에 구비된 각종 위락 시설들은 이동하는 내내 층층을 돌아다니며 즐길 수 있는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비싸지 않은 가격에 운행되고 있으니 관광객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이동수단이라 하겠다. 더욱 인상 깊은 점은 우리가 연상하는 유흥거리로 가득 찬 사치스런 유람선이 아니라 아동들과 유아들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별도의 놀이방과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른들만이 즐길 수 있는 축자적 의미로서의 유람이 아닌,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장으로써 기능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눈앞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섬들로 가득한 핀란드 만의 풍광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더러는 고작 시골학교 운동장 크기만 하기도, 더러는 차를 타고 돌아야 할 만큼 제법 큰 위용을 과시하기도 하니 바다와 군도(群島), 그리고 그들 사이를 유유자적 거니는 유람선은 모습은 실로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 낸 하모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다가올 발트 해의 기나긴 흑야도 이러한 조화 속에 함께 하리니, 올해도 에스토니아는 반가운 겨울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