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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툰드라를 향한 폴라 익스프레스


 

러시아 <폴라 익스프레스>


글·박정곤


러시아를 한번이라도 여행해 본 경험이 있다면 혹은 눈밭의 자작나무 숲에 발을 디디고자 노력했던 이라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대한 낭만과 동경을 아니 그리지 못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장장 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길을 일주야에 걸쳐 달음질하다보면 이제까지 걸어왔던 인생여정을 다시금 되뇌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횡단열차만이 러시아의 전부는 아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바이칼 호수를 지나 모스크바를 종착으로 하는, 이른 바 동과 서를 잇는 장중한 횡단열차가 있다면 러시아의 심장에서 북쪽 끝으로 연결되는 북방열차도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러시아 인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삶의 주요 교통수단이 되어 왔던 북방 열차. 모스크바 북쪽으로 즐비한 고도 야로슬라블과 볼로그다를 지나 북극해로 유입되는 차가운 뻬초라 강의 지류를 건너 폴라 우랄 지역과 땅끝 야말 반도의 라비트낭기(Labitnangi) 역을 종착으로 하는 북방열차(North Express)가 있으니, 필자가 이름 하길 가히 ‘폴라 익스프레스(Polar Express)’라 불릴 만하다.

80년대를 풍미한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과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이 더없이 어울리는 10월. 저 너머 팔공산 자락 아래 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때 아닌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낭만에 젖어 보고픈 이 시대의 추남(秋男)이라면 3등 기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더욱 간절하리라. 이에 우리는 극을 향해 기염을 토해내는 ‘폴라 익스프레스’에 몸을 싣고 가을 풍경 속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대륙의 소동맥 폴라 익스프레스

어두움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모스크바의 저녁. 세 개의 역(驛)이 자리한 콤소몰스카야 정거장은 오가는 행락으로 어느 때 보다 분주하다. 더러는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향하고자 기적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더러는 바쁜 출장길에 연착된 기차를 망연자실 바라보다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때를 노렸을 세라 행인들의 무거운 행랑을 반강제로 빼앗듯 하여 손수레에 재빨리 옮겨 싣고 머쓱하게 수고비를 요구하는 수레꾼들도 모스크바 역을 꾸미는 살아있는 한 장면이다.

역에 도착하여 삼십 여분을 기다리다 보니 정시를 넘긴 열차가 서서히 기적을 울리며 몸을 달구기 시작했다. 쉰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한 열차는 이내 매끄러운 흐름과 함께 눈앞의 정경을 차창 밖으로 밀어내었다. 모스크바를 등지고 달음질을 시작한 기차는 고도 야로슬라블을 지나 볼로그다에 이르러 잠시간 휴식을 취하였다. 특히나 러시아에서 볼로그다라는 도시는 역사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실례로, 냉혹한 인성으로 ‘뇌제(雷帝)’라 불리기까지 한 러시아의 황제 이반 4세는 모스크바에서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볼로그다에 위치한 한 수도원에서 예배를 보고자 하였는데 불현 듯 천장에서 벽돌 하나가 떨어져 그의 발등을 찍어버렸다. 놀라기도 하였거니와 노여움과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필시 불길한 징조일 것이라 여겨 수도 천도를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그가 머물렀던 이곳 수도원은 아직도 러시아의 주요 명소 가운데 한 곳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잠시 숨을 돌린 열차는 다시 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을 지나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니 기후는 더없이 냉랭해 졌으며, 차창 너머 보이는 풍광은 나무만 다를 뿐이지 우리네의 가을 풍경과 다름없었다. 철로를 따라 길게 늘어진 베료자(자작 나무의 러시아 이름) 숲은 노랗게 물들인 단풍을 살포시 떨어뜨리며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였으며, 북으로 가면 갈수록 그 키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단풍나무들은 곳곳에 붉은 점을 찍으며 바알간 손을 쏙 내밀었다.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이미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심지어 드문드문 눈이 쌓인 곳까지 보이기도 하였다.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철도 양 갈래의 단풍 평원 너머로 구름인 듯 안개인 듯 흐릿하게 보이는 흰 머리를 한 준봉들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폴라 우랄이 금새 눈앞에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우랄 문명권에 속한 우리는 통상 시베리아 중부를 가르는 우랄산맥을 두고 우리의 젖줄이라 하기도 하지만 실제 이곳의 출발점은 폴라 우랄에서부터이다. 벌써부터 소복이 쌓인 눈으로 겨울 내음을 물씬 풍기는 정상과 아직까지 초록이 채 가시지 않은 하부 능선에는 각각의 다른 계절이 공존하는 듯하였다. 이처럼 폴라 우랄의 시간과 공간은 대자연의 조화 속에 서로를 존중하며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아기를 품은 어머니처럼 폴라 우랄을 따사로이 끼고 도는 샛강에는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불곰이 뛰쳐나와 힘차게 강물을 헤치며 고기를 걸어 올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북을 향해 이틀 반을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필자의 몸에도 가을 향기가 아련히 젖어나고 있었음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베료자 숲 속 간이 역

북방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나 눈에 띄는 곳이 시골마을의 간이역들이다. 북방노선에는 이따금 역무원이 동그란 표지판을 든 손을 흔들며 지나는 열차의 서행을 유도하는, 이른 바 아직까지 인간의 냄새가 배어 있는 곳도 있었으며, 어느 곳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되어 인간의 흔적이 사라진지 오래인 듯하였다.

간혹 자그만 마을에 장이라도 열리는 날이면 오가는 기차에 물건을 팔고자 모여든 이들로 역은 어느새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에는 시골둥치에 텃밭을 가꾸어 오이와 토마토를 비롯한 야채를 정성스레 길러 행락객들에게 싼값에 맛난 애채를 제공하는 촌로가 있는가 하면, 부푼 얼굴에 배 둘레 넉넉한 인심을 안고 나온, 누가 보더라도 빵집 주인아저씨 같이 생긴 중년의 신사가 밀가루가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나와 자신의 얼굴처럼 부풀어 오른 고기만두와 야채 전병을 팔곤 한다. 백주대야부터 흥건히 술에 취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이들에게 동전을 구걸하는 ‘딸기코 할배’조차 이곳에선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간이역의 광경이 이러하다면 자연이 그러내는 광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더없이 푸르른 하늘은 솜사탕처럼 희고 투명한 뭉게구름을 피워 올리며 가을빛을 한층 더 진하게 만들었으며, 바람에 스치운 낙엽들의 합창은 그 소리로만으로 간이역에 자리한 이들의 머리를 말끔하게 씻어 주었다. 멀리서 메아리지며 날아오는 기적 소리는 마치 인간과 자연을 잇는 가교처럼 대자연에서 얻은 풍성한 수확으로 손님들을 맞이할 간이역 장사꾼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만들었다.

누구나 쉬어 갈 수 있고 편한 마음으로 흥정해 볼 수 있는 넉넉한 인심의 간이역에서 필자는 다시금 생각해 본다. 진정 우리가 돌아 갈 곳은 살아있는 인간이 숨쉬고 있는 간이역과 같은 곳이 아닐까. 

 


오비강에 비친 나를 내려다보며

종착지가 가까워진 지금, 이제 키 높은 나무도 선홍의 낙엽도 사라진 황량한 관목초원이 들어섰다. 땅은 수백만 년 전 졌을 법한 부엽이 일궈낸 진토로 탁한 색을 띄었고 정적 속 말없이 흐르는 강은 살얼음의 차가운 냉기로 덮여 있었다. 불현 듯 시인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이 문득 떠오른다. 떨어진 나뭇잎은 다시 흙이 되고, 또다시 낙엽으로 덮이고. 출발지의 힘찬 기적과 간이역의 정겨움도 이제는 초연함에 젖은 북방의 종착역 라비트낭기에 그 기세를 잃은 모양이다.

잠시간의 감상에서 벗어나 보니 벌써 기차는 종착역인 라비트낭기 역에 도착해 있었다. 바삐 비질을 하며 손님들을 몰아세우는 차장 아가씨의 억척스러움에 떠밀리다시피 필자는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이제까지 철로를 따라 이어져온 숱한 정경들을 경험케 하였던 기나긴 여정도 끝이 났다는 서운함과 함께 목적지에 무사히 다다름에서 온 안도감이 필자의 기분을 오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간이역들이 가져다 준 따뜻한 가을 향취는 기리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라비트낭기의 철로를 따라 뻗은 오비 강에 문득 필자는 얼굴을 비춰보았다. 가을비가 내린지라 탁해진 강물에 처음에는 그 모습이 잘 비춰지지 않다가, 좀 더 인내를 가지고 유심히 들여다보니 처음에는 두 눈이 내비치더니 이내 둥글 넙적한 필자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왔다. 긴 철도 여행에 다소 지친 듯한 낯빛이기도, 또 무언가 모르게 전보다 넉넉해진 얼굴이기도. 이틀 반나절의 여행 속에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필자는 예전의 내가 아닌 미래의 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 가을에 떠나는 여행, 내 속에 또 다른 동반자와 함께 해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