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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설원의 땅, 툰드라를 거닐다.


2010년 툰드라의 새해

순백(純白)의 나라 툰드라. 북극해를 끼고 있는 영구 동토의 땅.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하며 한곳에 터를 잡고 정착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노마드(Nomad)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 숨 쉬는 곳. 인간의 자취 보다는 야생 곰과 늑대, 북극여우의 흔적을 찾기가 오히려 쉬우며 문명의 손 떼가 아직도 타지 않은 진정한 미지의 땅. 드디어 이곳 툰드라에도 경인(庚寅)년 새해가 밝았다. 대내적으로는 역대 대통령들의 서거와 갖은 참사로 온 국민의 마음이 멍들었던 해였으며, 외적으로는 대기온도 상승으로 인한 기상이변과 지역분쟁으로 실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해인 2009년을 뒤로 하고 그야말로 희망에 찬 2010년의 붉은 해가 떠오른 것이다.

이곳에서 1월이란 하루에 두어 시간 밖에 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일조시간이 가장 짧은 시기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이른 아침 해돋이의 진풍경은 비록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툰드라 호랑이의 기운찬 새해 소식은 맑은 북극의 대기를 스치는 신선한 바람이 되어 우리에게 상쾌함을 전해 준다. 이처럼 툰드라의 1월은 추위의 정점에 서 있는 혹한의 시기이지만, 그와 동시에 지난 10월부터 시작된 기나긴 겨울이 이렇게 한걸음씩 발걸음을 해빙(解氷)으로 향해 옮겨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노마드들에게는 경인년의 첫 해가 어떻게 떠올랐는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도 우리처럼 저 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새롭게 다짐한 일들이 잘 이루어지도록 성심을 다해 빈다는 것이다.

아쉬움 속에 저무는 해를 송별하며 필자는 새해의 첫발을 툰드라 한 모퉁이에 살포시 남겨 놓고 왔다. 대지의 신 앞에 겸허하지 못할세라 너절하게 발도장을 흩뿌리기가 송구하였으나, 금세 눈으로 덮여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릴 미미한 인공(人工)의 기척이기에 유감없는 디딤으로 대자연에 대한 예(禮)를 대신하였다.

 

신의 땅, 인간의 노래 - 툰드라

오늘날 툰드라는 지구 북부에 널리 퍼져 있는 자연지역과 환경을 의미한다. 그 어원을 찾아보자면, '툰드라'(Tundra)라는 용어는 사미어(Sami language)에서 유래하였는데 '숲이 없는 평원'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툰드라는 낮은 관목으로 이루어진 초지 툰드라와 산림과 숲으로 이루어진 산악 툰드라, 그리고 수많은 소택(沼澤)지로 이루어진 택지 툰드라, 암석으로 구성된 암석지 툰드라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또한 이 지역은 북극 지방의 최남단으로서 북극권을 그 외의 지역과 경계 짓는 곳이기도 하다. 아한대의 침엽수림인 '타이가' 지역을 넘어서면 시야가 훤히 뚫리는 지평선이 나오고 그야말로 눈과 수풀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바로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설국(雪國)이라 할 수 있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어떤 생명이 버틸 수 있을까 만은 그럼에도 눈 밑을 헤집어 보니 녹음을 띤 풀들이 봄을 기다리며 조용히 동면하고 있었다. 필자가 찾아간 곳은 '나리얀 마르(Nariyan mar)'라는 도시로 북극권에서는 나름 큰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이곳은 러시아 연방 네네츠 자치구의 수도로서 인구 2만의 소도시이자 네네츠 민족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다. 러시아 내에서 북극해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대도시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한 툰드라 지역에서는 물자 수송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까지 항공교통을 이용하여 물자를 나른 후 스노모빌(snowmobile)과 같은 지상 수단으로 오지까지 전달하기도 한다. 그런 덕분에 시내 한 복판에서도 눈썰매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공항은 도시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하늘에서 바라본 활주로와 공항 부지는 마치 거대한 얼음판처럼 보였다. 지상과 구름의 경계가 흐린 탓에 얼어붙은 차창 너머로 비치는 주변의 풍경들은 가히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20여분 가량 차량으로 이동하니 곧 시내로 보이는 대로가 나왔다. 비록 적은 인구의 촌락이지만 거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상시로 제설차가 이동하며 도로를 말끔히 정비하였다. 물론 매서운 북풍으로 인해 대낮에도 시내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여기에 장단 맞춰 처마에 얼어붙은 고드름은 마치 북극의 위세를 뽐내기라도 하듯 사람 키를 넘길 정도로 자라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의 도전정신은 위대하였으니, 소도시에서 뿜어 나오는 활기는 살아있는 인간의 향을 느끼게 하였으며, 간간이 유모차를 끌고 툰드라의 맑은 공기 속에 자식에게 산책을 시켜주는 아낙들에게서는 우리네의 모정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들이 있기에 툰드라에서는 신이 허락한 동토를 딛고 꿋꿋이 살아가는 인간의 노래가 흐를 수 있었다. 이처럼 툰드라의 아침은 고요 속에 활기 차 있었다.

 

인류 최후의 유목민 - 네네츠인과 춤

앞서 말한 것처럼, 인류의 오랜 정착 생활은 거대 도시를 형성케 하였으며, 이는 오늘날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가 등장하는데 동력이 되었다. 각각의 대륙에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문명과 상공(商工)이 뻗어나갔으며, 19세기에 전성기를 이룬 산업혁명은 이에 박차를 가해 세계의 정치, 경제의 중심을 거의 대부분 수도권 및 산업화 지역에 정착시켰다. 실제로, 오늘날 수도 서울에 대한민국 전체의 2~3할에 해당하는 인구가 생활하고, 부와 산업 기반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예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북방의 유목민족 네네츠인들에게 대도시란 의미가 없다. 아니, 정착 생활 자체가 무의미할 것이다. 사하라의 '투아레그' 족과 남미의 '알라칼루프' 족과 함께 인류 최후의 유목민족으로 분류되는 네네츠 족은 '도착'과 '떠남'이 예정된 삶의 반복 속에 살아간다. '진정한 사람'을 뜻하는 '네네츠'인들은 유라크 사모예드(Yurak Samoyed)라 불리기도 하며, 아르항겔스크와 무르만스크 지역에서 출발하여 시베리아 툰드라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북극을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여름에는 북극해의 해변에서 지내며 겨울에는 내륙으로 남하하며 유목생활을 한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한 해 동안 이동하는 평균 거리만 하더라도 800킬로미터에서 1200킬로미터에 이른다는 것이다. 소규모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네네츠인들은 한 가족 당 평균 천여마리에서 칠천여 마리의 순록을 사육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다시 말해, 그들의 이동로는 순록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자연 방목지라 하겠다.

현대에 와서 네네츠인들의 유목은 대규모 집단 농장의 형식을 띠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가족 단위의 군락이 여전히 문명과는 동떨어져 살아가고 있음이 독특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춤'(Chum)이라 불리는 그들의 움막 가옥은 4-5인 가족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규모로서 가죽과 방수처리를 한 아마포를 활용하여 만들어졌다. 자주 이동을 해야 하는 생활 습성 상 춤은 간편하게 설치하고 신속한 철거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는데, 통상 4인이 한 조가 되어 설치 혹은 철거를 한다고 한다.

이튿날, 유목민의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탐사하고자 필자는 나리얀 마르를 출발하여 북방 60킬로미터까지 이동하였다. 최초에는 두어 시간 가량 차량으로 이동하였으나 어느 정도 북상하고 나니 결빙된 노면상태가 더 이상 차량이동을 허락지 않아 다시 순록 썰매를 타고 약 반시간동안 초지를 따라 이동하여야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오니 저 멀리서 보이던 점 하나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바로 유목민들의 춤이었던 것이다. 필자가 방문 한 곳은 네네츠 자치구에서 동북 지역 최북단에 이르는 길목이었다. 동으로는 어업 요충지인 무르만스크가 위치하고 있으며 서로는 야말 반도와 파미르 자치구가 자리하였다. 다행히 필자가 방문할 당시 현지 기온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정도라 전날보다는 나은 정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잠시만 밖에 서있어도 콧속까지 얼어붙는, 그야말로 북극의 추위가 피부 속까지 파고들었다.

춤에는 한 명의 러시아인을 포함하여 다섯 명의 장정들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유목민들은 물자를 공급받기 위해 순록썰매를 타고 인근마을로 나갔다 하였다. 춤 근방에서는 수백 마리의 순록들이 큰 눈을 깜박이며 이방인을 호기심에 차 쳐다보고 있었으며, 설원 가운데 동그랗게 말려 잠을 청하는 사슴몰이 개들도 눈에 들어왔다. 환한 웃음으로 이방의 객을 맞아 준 네네츠인 빅토르는 필자의 손을 끌고 춤 내부로 인도하였다. 춤 내부에는 주전자를 올린 전통 페치카가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실내 기온도 제법 따뜻하였다. 입구 옆에는 이제 갓 젖을 땐 듯한 하룻강아지가 잠을 청하고 있었으며, 야간 취침 시 필요한 순록 가죽으로 된 침구와 각종 마구(馬具)들이 가득하였다. 언제 준비했는지 모르게 따뜻하게 데워진 차 한 잔을 건네는 빅토르의 손엔 자연과 싸우며 살아온 지난 세월로 인이 가득 박여 있었다. 지금은 계속 남하 중이며 약 한 달에 한번 정도 시내에 나간다는 빅토르는 필자에게 최고의 대접을 하겠다며 순록의 생고기를 꺼내 보였다. 이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에게는 순록의 고기와 선혈을 생식하던 선대 유목민의 전통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인간이여, 한낱 점으로 살으리랏다! - 툰드라의 무속 '샤만'

문명이 발전하고 과학의 힘이 급격히 뻗어나가고 있는 21세기에도 무속 신앙은 여전히 민심을 사로잡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필자와 같이, 문화의 한 형태로 무속을 받아들이는 이도 있겠지만 시험과 승진, 장래의 배필, 재물 운세 등등의 이유로 점집을 찾는 이들이 있기에 연초에 점집은 늘 호황이다. 더욱이 용하다는 점집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들어앉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기도 한다는데, 이러한 신년 풍경이 비단 우리의 것만은 아니었다.

빅토르가 건네 준 따뜻한 차 한 잔에 몸과 마음을 녹인 후 필자는 샤만을 만나기 위해 차를 타고 다시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현지인의 인솔에 따라 도보로 눈밭을 한 시간 가량 헤치며 들어가니 유목민의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네 점집과 유사하게 오색 다홍의 리본들을 엮어 놓은 그루터기 나무 한그루가 춤 앞에 세워져 있었다. 소복이 눈이 쌓인 가지마다 방문객들의 소원이 담긴 수천 개의 매듭이 정성스레 달려 있었는데 이는 마치 서낭당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왔다. 유감스럽게도 무속을 관장하는 지역 유일의 점쟁이인 '샤만'이 자리에 없어 툰드라의 굿판을 목격할 수는 없었지만 멀리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를 찾아온 방문객들의 진지한 표정 속에서 샤만에 대한 존경심을 엿볼 수 있었다. 무속신앙을 탄압하고 샤머니즘을 말살하고자 했던 소비에트 정책 하에서도 이와 같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에 전통 무속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올해의 짐승이 무엇인지 호기심 어리게 물어오던 춤의 관리인은 호랑이의 해라는 말을 듣자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올해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며 소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생각인 듯, 툰드라에도 호랑이를 신성시하는 전통이 아직 남아있던 모양인 게다. 한 점의 순록 고기와 차 한 잔, 그리고 흘레브(러시아인들의 빵) 몇 조각에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고 살아가는 문명인들의 삶이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드넓은 툰드라의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유목인의 춤에서 필자는 타인의 행복을 빌어준 샤만의 관리인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꿈과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 툰드라의 가르침은 계속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