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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러시아 국립 어린이 도서관

자유로운 클럽활동을 통한 독서의 세계로!

러시아 국립 어린이 도서관(Russian State Youth Library)

 글․박정곤 고리키문학대학교 <한러문화 연구원> 원장

 봄의 색이 완연한 3월이 왔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오색영롱한 봄꽃들의 화려한 만개를 기념하기 위해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리고 있으며, 이러한 축제를 통해 기나긴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겨울이 긴 시베리아의 동토 러시아 제국에서는 여전히 눈꽃이 만발하다. 3월이라 하지만 눈보라와 거리곳곳에 눌러 붙은 얼음들로 행보마저 쉽지 않은 터이니, 더러는 봄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거리를 맴돌 뿐이다. 그럼에도 ‘기다림의 미학’이 생활화된 러시아 인들에게 3월은 활력의 계절이라 하였던가. 오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이미 봄을 기다리는 미소가 가득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독서 인구가 많은 곳이 러시아다보니 초봄의 강추위도 이들의 독서열풍 앞에서는 제 기를 펴지 못한다. 더욱이 유소년시절부터 습관화된 독서의 생활화는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3월의 강추위에도 대부분의 열람실을 가득 차게 만든다. 필자가 찾아간 <러시아 국립 어린이 도서관> 또한 자라나는 ‘러시아의 꿈나무’들로 어김없이 가득 차 있었으니, 어린이 독서가들이 이곳을 쉼 없이 방문하는 까닭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조용히 함께 들여다보자.

 

어린이들을 위한 쉼터 - <국립 어린이 도서관>

아동들만을 위한 개별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때 우리에게는 신선한 느낌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 러시아에서는 이미 40여 년 전부터 국가에서 관리하는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존재해 왔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체 러시아에 도서관 수는 총 47000여 곳에 달하며, 아동들을 위한 도서관만 하여도 약 4000여 개소가 넘는다. 이 가운데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거대 도서관, 즉 유럽 최대 장서를 자랑하는 레닌 도서관을 비롯하여 각각의 시도에서 가장 큰 도서관들을 모아놓은 76개소의 국가 지정 도서관이 있는데, <국립 어린이 도서관>은 그 가운데 하나로서 단일 어린이 전용 도서관으로서는 세계에서 ‘으뜸’으로 뽑히는 곳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최초에 러시아 국립 어린이 도서관(이하 어린이 도서관)은 1969년 교육학과 심리학, 아동문학 분야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센터로 설립되었다. 각 분야의 연구원들이 ‘아동학’이라는 공통된 과제를 화두로 삼아 꾸준히 연구 활동을 벌여오다 소비에트가 붕괴되면서 오늘날의 어린이 도서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4층으로 된 대리석 건물의 어린이 도서관은 오는 12월이 되면 설립한지 정확히 41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긴 역사 동안 이곳은 어린이와 부모들을 위한 ‘문화 계몽 중심지’로서 활기차게 역할 하여 왔다.

도서관에는 해마다 5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에는 한두 살 된 영유아에서부터 16세 이하의 취학 아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있었으며,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대학생, 교사, 아동 교육학을 담당하는 전문가들도 끊임없이 이곳을 찾아 장서를 열람한다고 한다. 이처럼 어린이 도서관은 실로 다양한 연령층의 독서 객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긴 역사를 바탕으로 세워졌기에 가히 놀라운 방문객 수를 자랑하기도 있지만, 도서관의 규모를 살펴보자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도서관은 관장실과 등록실, 행정실을 제외하고 18개 분과의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다. 실례로, 미취학 아동과 저학년을 위한 열람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위한 분과, 독서 지도 분과, 멀티미디어 분과, 독서 심리분과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이와 함께, 도서관 방문객들에게는 각종 악보와 시청각 자료, 외국 서적 등을 열람할 수 있는 다섯 개의 열람실이 개방되어있으며 회화 및 예술 자료실, 미디어실, 아동심리-교육 상담센터, 간이 음악 콘서트홀, 시낭송 발표회장 등도 마련되어 있다. 아울러 오래된 아동문학 자료들과 필사본, 작가들의 개인 친필문서를 보관하는 고문서 기록실도 잘 정비가 되어 있다.

도서관은 서적과 잡지, 신문을 비롯한 도서자료와 악보, 오디오, 영상 자료 등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는데, 장서량과 보유한 자료의 양은 자그마치 50만점에 달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린이 도서관은 러시아 각지의 주립 도서관과 연구실, 대학들과 업무 협정을 맺어 공조체계를 잘 유지하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한다. 계몽 교육, 정보전달 교육 부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바, <9월 1l일>, <러시아 구전문학 교육>, <유모>, <모성애> 등과 같은 신문, 잡지사와도 활발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어린이 도서관은 러시아에서 최초로 대문호들의 일대기를 담아 발간한 전기(傳記)사전인 <우리 아이들의 작가들>을 편찬하기도 하였는데, 사전을 편찬한 어린이 도서관 연구자들은 러시아 도서관 연맹, 유라시아 도서관 앙상블, 국제 아동문학 협회의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도서관의 많은 종사자들이 러시아 아동문학상, 국제 예술가상 등의 수상 후보로도 거명되기도 하며, 이를 통해 국제적인 문학 교류를 확장시켜 나가고자 하고 있다.

 

어린이 독서클럽의 활성화

이러한 활발한 활동 덕분에 도서관은 국가로부터 각종 훈장과 메달을 수여 받았으며, 현 도서관장을 맡고 있는 G.키슬로프스카야는 부임 이후 1년 만에 여러 분과에서 활발한 성과를 거두어 어린이 도서관의 향후 전망을 더욱 밝혔다. 그녀는 ‘어린이 도서관은 단순히 독서만을 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어린이 및 청소년들이 휴식을 취하며 보다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자발적인 독서활동을 고취하고자 ‘독서클럽’ 활동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하고 있다고 그녀가 덧붙인 바, 이러한 과정 속에 어린이들은 올바른 독서활동을 배울 뿐만 아니라 장래에 사회로 진출함에 요구되는 소양들을 이곳에서 익힌다고 하였다.

긴 역사와 방대한 장서량 너머로 필자에게도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었는데, 실제 도서관 내에 자치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어린이 독서클럽만 하여도 20여 개가 넘는 상황이었다.

모스크바 도시 전체 아동들의 활발한 참여로 이루어지는 독서 클럽 활동은 거의 매일 클럽별 모임이 있을 정도로 분주하다. 2~3세 영유아들이 부모들과 함께 언어 발달 능력 훈련을 하는 ‘기초 러시아어 읽기’클럽에서부터 러시아 고전 서적을 탐독하는 ‘고전 문학’클럽, 구전 동화를 읽고 직접 재현해보기도 하는 ‘구전동화’클럽 등 실로 다채로운 분야에서 활동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구전동화’클럽은 특별히 마련된 ‘구연 동화실’에서 모임을 가지는데, 어린이들은 각국의 구연동화를 전문 동화구연가로부터 들은 후 자신들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몸소 줄거리를 체험해보는 기회를 가진다. 여기에 필요한 갖가지 교육 보조재들은 도서관 측에서 제공하는데, 일개 방송 스튜디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잘 마련된 세트에 절로 입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처럼 도서관은 클럽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어린이들의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그야말로 ‘기다려지는 내일’을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교육의 연장, 거대한 문화공간으로서의 어린이 도서관

일반적으로, ‘도서관에서 과연 어린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종종 우리는 가져본다. 책을 읽고 혹은 비디오를 보고, 혹은 듣고 싶었던 음악을 듣곤 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어린이 도서관>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실제 이곳은 도서관 이상의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바, 수많은 학생들이 방과 후 도서관에 찾아오면 각 연령대를 맡은 담당자들은 반가이 그들을 맞이하며 해당 열람실로 안내한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고, 심지어 외국어를 가르치거나 올바른 독서 습관에 대해서 지도하기도 한다.

특히 각 학년별로 그룹을 이루어 방과 후 수업도 진행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연장선’이라 하겠다. 가령, 음악과 미술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도서관에 등록한 후 열람실로 이동해 자신이 관심 있어 하는 자료들을 대출한다. 그 자료들을 가지고 정해진 시간에 해당 열람실을 찾아 어린이들은 전문가가 이끄는 수업에 참여한다.

오늘날 세계문학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푸쉬킨을 탄생시킨 나라답게 러시아 어린이 도서관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독서지도 계획들을 만들어 나갈 전망이라 한다. 특히 현대에 와서는 보다 편리하게 어린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시스템들을 연구, 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전자 책, 인터넷 북, 음란서적 방지시스템, 3D 입체 자료 등이 개발되었으며, 앞으로도 이곳은 러시아의 고전적 전통을 겸비한 최신식 ‘디지털 도서관’(Digital library)을 정착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 다짐하였다.

이처럼 러시아에서는 독서 이상의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는 총체적인 ‘문화 공작소’로서 어린이 도서관이 기능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 문화공간을 조성하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교육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임을 몸소 전해주고 있다. 

출처: 국립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 소식지 (2010년 3월호)
       책 도서관 그리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