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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러시아 우랄산맥<2>

러시아 우랄산맥<2>

코미공화국을 가다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이제야 막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 온 시베리아는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변화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눈 덮인 우랄 산맥의 봉우리와 이따금 예고 없이 찾아오는 눈보라로 겨울이 길다 느끼게 하지만 녹아내린 강을 따라 유유히 떠다니는 카누와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들은 정녕 봄이 왔음을 잘 알리고 있다. 러시아의 젖줄 우랄산맥을 동쪽으로 끼고 있는 코미 공화국(Republic of Komi)은 대한민국의 영토보다 더 큰 러시아 연방 자치 공화국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곳은 석유와 가스를 비롯한 천해의 자연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경제개발 사업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유네스코에 등록된 처녀림과 우랄의 장중한 산맥으로 태곳적 원시생태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있기도 하다.

코미 페르먀키(Komi-permiaki)가 사는 남부의 페름 지방과 코미 즈랴네(Komi-zypiane)가 사는 극우랄 지역의 보르쿠타에 이르기까지 코미 공화국은 평원과 타이가, 툰드라에 걸쳐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우랄산맥에 최 근접한 마을인 예레메예보(Eremeevo)와 북방 도시 보르쿠타(Vorkuta)를 필자는 방문하였다. 따뜻한 햇살 아래 겨우내 잠들었던 동식물이 깨어나 그야말로 우랄의 원기를 느끼게 하였던 이번 방문은 무엇보다 우리와 같이 우랄에 뿌리를 둔 민족이지만 푸른 눈동자를 가진 이국적인 형색의 코미 족과 대면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값졌다. 도회지에 진출하여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와 달리 이 곳 마을의 주민들은 인터넷과 스마트 폰, 영화관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또한 시골마을의 정서가 다 그러하겠다만 유독 우리네 시골의 인심을 물씬 느끼게 만드는 예례메예보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는 더욱 감동스러웠는데 필자는 그들의 일상 속에 투영된 우리의 현재를 재발견하고자 하였다.

 

 

우랄의 푸른 눈동자 - 코미(Komi)족

여러 소수민족들이 어우러져 살던 우랄 중북부에는 일찍이 다양한 문명이 혼재하였다. 대부분이 유목생활을 하였던 터라 딱히 땅의 주인이 없었기에 누구나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였다. 실제로 정착민이 생기기 이전 우랄의 북으로는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네네츠(nenets)인이 유목을 하고 있었으며, 동으로는 한티민족이, 서로는 피노-우고르 계열인 코미가 살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민족이 코미이다. 코미족은 코미 즈이랴나, 코미 모르트, 코미 보이트릐 등으로 구분된다. 코미 공화국을 중심으로 분포된 코미족은 무르만스크, 네네츠 자치구, 튜멘주, 한티만시스크, 야말로네네츠 등지에 퍼져있다. 세계적으로 코미 족의 인구는 35만 가량으로 추산된다. 전체 러시아에는 29만 3천에 달하는 코미 족(코미 즈랴나)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코미 공화국에 사는 코미 족은 25만 6천에 달하며 나머지는 혼혈 계통으로 분류된다.

북방 민족 대부분이 샤머니즘을 숭상하며 토착 종교를 가지고 있는 반면, 코미족은 거의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도이다. 17세기 경 러시아 정교회 신부가 이곳으로 와서 포교 활동을 벌인 후 거의 300년이 넘게 정교회가 융성하고 있는데 그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강한지는 북방의 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르쿠타 지역의 유목민들은 다른 유목민들처럼 춤(chum-가죽으로 만든 움막)에서 생활하는데 춤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한눈에 띄는 자리에 십자가와 성상을 모시고 있다. 잦은 유목으로 지칠 만도 하지만 언제나 유목의 시작과 끝에는 십자가와 주기도문이 함께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에 사는 이들도 개개 가정마다 성스러운 장소라 불리는 집안의 한 구석에 성화(Icon)를 모시고 있는데 이처럼 코미인들의 생활은 러시아 정교회와 밀접한 연관을 가졌으며 신앙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눈이 녹는 봄과 여름에는 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그와 동시에 숲에서 얻어지는 각종 나물로 생활을 영위하며 겨울에는 사냥과 저장해 놓은 식품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코미인들은 남과 북으로 생활 습관이 크게 나누어지는데 숲과 보다 가까운 중남부 코미에서는 숲을 중심으로 소규모의 농경이 발달해 있으며 북쪽으로 갈수록 순록유목과 사냥, 즉 덫을 이용한 북극여우 및 북극토끼 사냥에 가까워진다.

 

코미 원시림을 눈앞에 둔 마을 - 예레메예보

길이 살아 있는 곳. 두터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꽉 덮인 숨죽은 길이 아닌 그야말로 깨끗한 황토먼지가 바람 따라 날리며 아침이슬 젖은 잎사귀 상큼한 향내가 풍기는 살아있는 시골길이 있는 곳. 러시아의 오지 가운데 아직도 현대화 된 길이 한 곳도 놓이지 않은 마을 예레메예보. 이곳은 우랄을 가기 위한 마지막 경로이자 최 끝단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창시자이자 선조 격인 ‘예레메이’가 이곳에 터를 닦아 마을이 만들어 진지도 벌써 수백 년 전이라 하겠지만 이직도 이곳은 큰 변화가 없다고 한다. 마을에 변한 것이라곤 고작 회관에 공중 전화한대 들어온 것 뿐. 아직도 이곳엔 병원도, 휴대 전화도, 인터넷도 없다. 밥을 짓기 위해 장작을 해오는 전경은 이곳에선 이미 수백 년째 이어져 오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누구 하나 아쉬움도 애석함도 갖고 있지 않았다. 예레메예보는 마을의 행정 소재지이자 강을 끼고 바로 너머에 위치한 프리우랄스크와 합쳐도 천명이 넘지 않는 아주 적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게나마 전화가 터지고 병원이 있는 도회지까지는 차량으로 약 4시간가량 이동해야 하는 곳이다 보니 우랄의 오지 가운데 오지라 할 수 있다.

이 곳 주민의 대부분은 코미(komi)인이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러시아어 보다는 코미어가 우선하였다. 이들은 숲에서 생업을 이어갔는데 눈이 녹는 봄이 오면 집집마다 텃밭을 가꾸어 감자와 야채를 심고 숲에서 버섯을 채취할 준비를 한다. 또한 각종 들짐승들과 멧새들을 사냥하여 의복과 식량을 준비하였다. 실제로 사냥을 주업으로 하는 마을 주민의 숲 속 오두막을 방문해 보니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방식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서 약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사냥꾼의 오두막은 우랄로 이어지는 타이가 숲의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이곳까지 통상 스키를 타고 마을에서 이동해 온다고 하였다. 휴대하는 것은 도끼 한 자루와 총 한 자루가 그의 전부였다. 포획 량이 많을 날도, 혹은 들꿩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사냥꾼은 언제나 유쾌하였다. 모든 건 숲이 알아서 주는 것이니 많고 적음에 노여워 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즉, 오늘 잡지 못하면 더욱 풍성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 더욱 즐겁다고 하니 과히 숲의 지혜가 녹아 있는 현자의 모습을 바로 이곳의 사냥꾼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촌로들의 마음 씀씀이 또한 그와 같았으니 어느 집을 방문하더라도 지하 창고를 열어 지난여름에 저장해 두었던 천연과일 통조림과 버섯수프, 약초차를 기꺼이 꺼내어 손님들을 대접하였다. 이처럼 코미인들의 인심은 후덕하여 찾아드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러시아의 스톤헨지 - 만푸푸뇨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스톤헨지(Stonehenge)와 이스트(Easter Island)섬의 석상은 자연이 만들어낸 풍화작용과 더불어 인류가 만들어 낸 문명의 절대조화를 상징한다. 아직까지도 그 비밀은 완벽하게 풀리지 않았는데 러시아에도 이와 유사한 곳이 있으니 바로 ‘만푸푸뇨르’(Manpupuner)라 불리는 곳이다. ‘우상들의 작은 언덕’ 혹은 ‘돌 우상이 서 있는 산’이라 해석되는 이곳은 한티 민족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코미와 한티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연중 만푸푸뇨르에 다다를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에는 굳게 다져진 눈길과 얼어붙은 강으로 일반차량과 스노모빌이 이동이 자유롭지만 봄과 가을에는 눈과 얼음이 얼고 녹는 시기라 누구도 접근을 쉽게 할 수 없다. 필자 또한 기상의 문제로 그저 먼발치에서 석상이 서 있는 방향만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규모 면에서도 만푸푸뇨르는 세계적인 불가사의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랄의 정상에 위치한 석상들은 그 키가 30미터에서 42미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며 실제 ‘러시아의 7개의 기적’가운데 다섯 번째로 뽑힌다고 한다.

만푸푸뇨르와 관련된 전설은 몇 가지가 되지만 아직까지도 이곳 코미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바는 이러하다. 아주 오랜 옛날 이곳 우랄에는 일곱 명의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남자 형제가 여섯이요, 여자 형제가 하나 있었다. 맏이에서부터 막내에 이르기까지 두루 인심이 후덕하였던 그들은 서로서로 도와 가며 함께 살아갔다. 특히 개개 형제들은 고유한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실례로 맏이가 활을 아주 잘 쏘았다면 둘째는 힘이 장사였으며 셋째는 총명한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울러 여자형제는 어느 하나 꿰맬 수 없는 것들이 없어 항상 형제들의 갑옷과 도구들을 튼튼히 바느질하고 손질해 주었다. 또한 그 아래 동생들도 각각의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가령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다거나 칼을 잘 쓰는 훌륭한 검객이거나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마귀들이 형제들의 우애를 시샘하게 되었다. 그들은 형제들 가운데 몇몇을 꾀어 서로 시기하게 만들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튼튼한 우애심에 곤욕만 치루고 돌아가게 되었다. 이에 악의를 품은 마귀들은 형제들을 이곳 우랄의 언덕에 불러내어 마법을 걸었으니 형제들은 언덕에 선 채 그대로 돌이 되어 아직까지도 7개의 거대 석상이 우랄 언덕에 남아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규모로 보았을 때 만푸푸뇨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석상이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한다. 인간의 힘에 의해서인지 자연의 융기와 침식으로 인해 만들어졌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이 우랄과 숲에 사는 이들의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가오는 봄에 이곳 주민들은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며 그들은 어제나 해왔던 것처럼 만푸푸뇨르를 벗 삼아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우랄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던 필자에게 코미 주민들은 만푸푸뇨르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고향처럼 다시 반길 것이기에 때를 기다리자 하며 위로하였다. 그들의 위로 속에 필자는 우랄을 등지고 유쾌한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