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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볼가를 따라 거닐다 - 아스트라한

볼가 강의 종착역을 찾다

러시아 <아스트라한>을 가다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어머니 볼가. 러시아인들은 대게 볼가(Volga)강을 이렇게 부른다. 그 시작은 모스크바 북쪽의 여린 물줄기들에서 비롯되나 카스피 해(Caspian sea)를 마주하는 하구에서는 가히 망망대해처럼 드넓은 러시아의 젖줄, 볼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가운데 하나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강인 볼가는 러시아 서부를 유유히 가로지르며 때로는 전쟁과 원정으로 얼룩진 질곡의 역사 속에, 때로는 산업화의 이동수단이자 정신적 동력으로서 말없이 제 몫을 지켜왔다.

예컨대 흐르는 강은 말이 없다 했던가. 9월까지 이어진 폭염 속에 볼가 강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아스트라한(Astrakhan)은 뙤약볕을 피해 강변을 찾아든 인파들로 여전히 붐볐다. 강을 끼고 레저와 휴식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부산함과 흥겨움으로 가득 찬 볼가였으나, 소음은 우리네 세속에서 비롯하였을 뿐, 정작 그들을 품고 있는 강은 언제나 그랬듯 말없이 묵묵히 흐르고만 있었다. 인간들은 저를 두고 어머니라 외치건만 카스피라는 바다를 접하는 아스트라한의 볼가는 이제서야 쉼을 맞이하듯 그 속도를 한풀 늦춘다.

이처럼 볼가가 있기에 아스트라한은 일 년 내내 유쾌하고 풍요롭다. 겨울에는 긴 강을 따라 스케이트, 얼음낚시와 같은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로, 지금과 같은 늦여름의 9월엔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오색의 가로등 아래 산책을 즐기는 인파들로 가득하니, 이 모든 게 볼가가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니겠는가. 특히 필자가 방문한 지금은 아스트라한에서 여름 풍광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에 자연과 인간 모두가 아름다움의 절정을 과시하고 있었다. 길고도 길었던 장마로 인해 우리에겐 근심과 설움, 그리고 아픔으로 가득했던 지난여름. 이제 마음 가득했던 수심을 저 넓은 볼가 강에 흘려보내며 희망이 피어날 가을을 기다려보자.
 

볼가의 별 - 아스트라한

러시아인들에게 아스트라한은 다소 이국적인 성격이 강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러시아 정교도들이 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다. 실례로 아스트라한 지역은 과거 러시아가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 지배당했던 지역으로서 칭기즈 칸의 사후 서쪽으로 떨어져 나온 킵차크한국이 1200년 경 카스피 해와 아랄 해를 점령한 이후 오랫동안 이곳의 주인으로 살아왔다. 몽골이 물러간 이후에도 이곳은 아랍 문명과의 교류의 중심지이자 동방으로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으니 정교회의 문화 속에 다른 종교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다.

아스트라한의 지명에 대한 전사는 참으로 기나길다. 실제, 도시 명칭이 거의 스무 개에 달할 정도니 그 이름만으로도 과거 변화무쌍했던 역사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실례로, 아스트라칸, 아슈타라한, 하지타라한 등 다양한 도시 명칭을 거쳐 오늘날 아스트라한이 되었는데, 이들 도시 명칭 가운데에는 '낮은 곳에 위치한 지역'이란 뜻도 있으며, 또 '순례자-조세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이란 의미를 내포한 명칭도 있다.

최초에 이곳이 언급된 것은 1300년대 볼가 강 하구 일대를 여행하였던 아랍인 이븐 바투아에(Ivn Batua) 의해서라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하자르 한국의 수도인 '이틸'이 자리했었다는 설이 있을 만큼 이곳은 러시아인이 아닌 이민족들이 지배해 왔던 땅이었는데, 이반 뇌제가 1556년 이곳을 러시아에 복속시키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이곳의 주인은 슬라브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유럽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는 당대 동방의 문화와 이슬람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했던 이곳을 러시아 정교가 굳건히 방호하였기에 아랍의 세력이 전 유럽에 침투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가지기도 한다.

또한 아스트라한은 제정 러시아 초기 국가의 기틀을 뒤엎을 만큼 강성했던 반란군 군대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진격했던 희대의 호걸(豪傑) 스텐카 라진(Stenka Razin, 본명은 스테판)과 그의 군사들이 진출했던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최초의 러시아 예술영화의 주인공이자 애틋한 민요의 노래가사로 잘 알려진 스텐카 라진의 이야기는 바로 이 볼가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민중들을 등진 로마노프 왕가에 항거해 거대한 함대를 조직한 후 볼가 강을 타고 들어와 카스피 해로 진출했다. 자신들의 사리에만 어두웠던 당시 위정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스텐카 라진은 결국 체포되어 모스크바 크렘린 성벽 근처에서 처참히 사지가 뜯겨 죽고 만다. 그러나 그를 기리는 노래는 아직도 이곳 볼가를 타고 떠다니고 있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을 얻은 것은 소비에트 시절인 1943년 12월의 일이다. 인구 50만이 조금 넘는 이 도시는 약 300년가량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도시가 설립된 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500여년 가까이 되었지만 정식 러시아의 지방 영지로서는 18세기 초엽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아직도 아스트라한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시내에는 다소 중세적 느낌이 드는 곳이 많았다. 시내 중심에 서 있는 아스트라한의 크렘린은 도심의 상징물로서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그와 동시에 최근 건축된 고층의 호텔과 관공서들은 신구의 교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다양한 민족들이 눈에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건물들이 도시 색을 다채롭게 하였다. 지금도 이곳엔 러시아인들과 아우러진 타타르인과 칼미크 인, 그리고 남방 계열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인들이 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러시아의 영혼을 담다 - 볼가 강

러시아인들에게 볼가는 삶의 터전이자 정신적인 버팀목과도 같다. 모스크바 근교에서 시작된 볼가는 타타르스탄과 사마라, 볼고그라드 등지를 거쳐 아스트라한으로 유입되어 카스피 해로 흘러들어간다. 그 길이만 하여도 57만 1200킬로에 다다르고, 볼가를 끼고 사는 민족만 하여도 러시아인인 루스키를 비롯하여 타타르, 바슈키르, 마리, 카자크, 칼미크 족 등 수십여 민족에 이른다.

고대에는 '라'(La), 중세에는 하자르 제국의 영향으로 '이틸'(Itil) 또는 '에틸'(Etil)이라고 불렸던 이 강은 서부 러시아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경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실례로 러시아 연방 내 중소 공화국의 많은 수도들이 볼가를 따라 건설되었고 교역을 위한 물자 운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볼가가 해왔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과거 러시아의 경제와 문화, 그리고 지방과 중앙을 잇는 주요 교착점이 볼가 변에 세워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기에 볼가는 러시아의 어머니이자 다양한 민족들을 한 곳으로 엮어 주는 대동맥과도 같다 하겠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다. 볼가의 경치 또한 사회적 역할 이상으로 빼어나다. 필자도 직접 체험해 보았지만 특히 볼가의 야경은 남달랐다. 시원한 강바람이야 어느 강에선들 찾겠지만 강을 따라 발달한 자연과 어우러진 강변도로의 풍광은 인위적이지만 자연미를 극대화한, 근간에 보기 드문 문명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강변을 거니는 볼가 사람들의 표정마저 예술로 승화되어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유화를 연상케 하였다. 하구에 사는 이들이 이토록 볼가의 야경을 극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을 터. 실제 조랑말을 이끌며 아동들을 태우고 가는 마부와 저녁녘의 열기를 피해 손에 손을 잡고 나온 대식구들, 그리고 가로등 불빛 아래 사랑을 속삭이며 잔잔히 흐르는 볼가를 바라보고 있는 연인들이 야경의 멋을 더하고 있다. 또한 카잔과 사마라, 아스트라한을 비롯하여 매일같이 아름다운 야경을 뽐내는 도시들이 볼가를 따라 즐비하고 있으니, 언제나 이들 도시에는 흐르는 볼가의 강물처럼 시원하고도 청량한 내음으로 가득하다.

늦여름까지도 볼가하구에 사는 사람들은 이처럼 강가에 나와 피서를 즐겼다. 우리에게 9월은 이미 가을을 대표하는 추석명절로 한껏 선선한 기운이 가득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늦여름이 가시질 않아 많은 인파가 강변에서 수영을 하거나 낚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이제 곧 다가올 가을과 이른 겨울이 이들 몸을 움츠리게 하겠지만 한 여름 가득 충전된 여름의 기운은 내년 여름까지 이들이 버틸 수 있게 만드는 활력소와 같으리라. 그러기에 늦여름은 올 해 볼가에서 보낼 마지막 추억의 장으로써 그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이들 인파가 분비는 강변과 군데군데 들어선 선상 카페들 사이로 녹슨 화물선과 어선들이 보였다. 아마 어업이 한창이었던 80년대 후반 왕성한 활동을 하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로 조용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였다. 한 때는 저들도 드넓은 볼가를 타고 흘러 흘러가 카스피 해로 다다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불현 듯 시간의 무상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다시 저 어선들이 볼가의 물살을 세차게 가르며 힘차게 그물을 당길 그날이 오리라, 과거의 영화가 다시금 용솟음칠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빌어보는 동안 어느덧 볼가는 길게 늘어 선 해를 삼키고 있었다.

수산자원의 보존과 조화

아스트라한의 시장은 다소 소박하였다. 그다지 넓지 않은 면적에 20여 미터 가량의 서너 개의 열이 상단의 고작 전부였지만, 인심 후덕해 보이는 촌로들과 검게 그을린 두 손에 억척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그러면서도 볼가와 같은 미소를 담고 있는 여인네들이 시장의 향취를 온화하게 데우고 있었다.

바다를 낀 강변도시이니만큼 대부분의 상품이 수산물이었다. 강에서 잡아 올린 메기와 우리의 잉어나 붕어와 비슷한 어류들도 팔리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상품은 역시나 철갑상어를 활용한 제품들이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철갑상어를 보기 좋게 포를 떠서 훈제한 제품이 값비싸게 팔리고 있었는데 우리네 명절과 제사에 질 좋은 바다생선과 건어가 빠지지 않는 것처럼 이곳도 명절과 축일에는 꼭 철갑상어가 상에 올라야 한다고 하였다.

앞서 말한바, 아스트라한은 세계적인 희귀종인 철갑상어가 자생하는 곳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그렇지만 유럽인들에게 아스트라한은 그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인 캐비아가 생산되는 곳이기에 더욱 보석과도 같은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러시아식 상차림의 백미라 하였던가, 몇몇 허가 받은 자만이 채취하고 팔 수 있다는 철갑상어 알, 즉 캐비아가 이곳 재래시장에서도 성황리에 팔리고 있었다. 러시아어로는 '이크라'(Ikra)라 불리는 캐비아는 러시아 전통음식 가운데 가장 값비싼 음식이다. 비록 비싼 가격으로 인해 자주 먹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과 부유층 모두 즐긴다고 하니 캐비아에 대한 러시아인의 사랑이 짐작되었다.
 

이런 연유로 원산지에서 마저도 캐비아는 여전히 귀족 대접을 받고 있었다. 가령, 손바닥 보다 더 조그마한 캐비아 한 통이 20-30만원을 호가하는가하더니 킬로그램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상품 또한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서 팔리고 있었는데, 캐비아는 건강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담백한 맛이 일품이기에 서양인들에게는 일 년 사시사철 귀한 상품이자 값진 선물이라고 지나던 상인이 덧붙였다. 시장의 한 아주머니께서는 동양에서 온 우리에게 이크라를 내어 보여 주시며 일반 물고기알과 차이점을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흔히 우리가 캐비아라고 하는 것은 철갑상어가 아닌 연어나 송어 등 다른 어류의 알에서 채취한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면 대부분 속고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값비싼 철갑상어와 그 알이 더 귀해진 데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제 몫을 하였다. 철갑상어는 1980년대 이후 엄청나게 남획되었던 탓에 오늘날에는 그 개체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소비에트 때에는 철저한 단속을 통해 어종을 보호해 왔는데 소비에트 붕괴 이후 적절한 법제도도 없어졌을 뿐더러 다양한 불법적인 방법으로 남획되었기에 거의 멸종의 수준에 가깝게 그 수가 줄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제는 철저히 법으로 포획을 금지하고 있었다. 캐비아 또한 일 년에 딱 한번, 즉 5월에만 거둘 뿐 그 이 외의 기간에는 알도 상어도 전혀 수확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 수 있었다. 특히 볼가 강 하구 지역은 카스피 해로 유입되며 다른 국가들과 국경을 이루고 있어 인근 카스피 해 5개국과 천연자원 보존을 위해 서로 협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업에 대한 시장 상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실제 한 어부는 20년 넘게 직접 볼가에서 고기를 잡아왔다고 하는데 러시아 전역에서 가장 풍부한 민물 어(魚)자원과 최고등급의 철갑상어를 잡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아스트라한이라며 한껏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들 어부가 드넓은 볼가의 델타에서 끌어올린 자연의 선물들을 이제 우리는 자손대대 상처 없이 잘 전해야 할 것이다. 대자연과의 약속만 잘 지켜나간다면 진정 상실의 염려는 없으리라. 볼가가 카스피를 향해 흘러들기 위해 잠시 그 흐름을 늦추듯 우리도 잠시 숨을 고르고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이 없도록, 맑은 하늘과 깨끗한 땅이 노래하는 미래를 준비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