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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료/러시아 정치 및 국제관계

러시아와 나토의 군사-정치 협력 가능성

러시아와 나토의 군사-정치 협력 가능성

 

서론

1991년 소련 붕괴는 정치, 군사적으로 평화적 절차에 의해 진행된 사건이었지만 소련 내부적인 지독한 경제공황을 야기 했으며, 이 시기에 때를 맞추어 미국의 경제력은 소련의 경제회생을 위해 다방면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러나 작금에 이르는 지구화 과정은 상당수의 서방세계에 익숙한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기반한 국가생존 논리이며 소련 등의 구 공산권은 지구화는 질적으로 다르고 오히려 그들과 단절된 이른바 침체의 경제구조를 지님으로 해서 원활한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은 실패로 돌아갔었다.[1] 그 이후 지속된 러시아의 미국과 서유럽세계에 대한 환멸은 9,11 사태 이후 해결 조짐을 보이는 듯 했으나 최근 불거지는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의 독립문제로 또다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설 : 러시아와 나토의 관계는 이미 소원된 상태이며 오히려 악화되고 있고 냉전기 미소 양국간의 관계와 큰 차이가 없다.

 

본론

대부분의 러시아 정치학자 및 정치가들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이 소련 붕괴에 대해 추구했던 정치, 경제정책은 소련의 경제적 안정과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착이 아니라 완벽한 소련의 붕괴였다.

냉전의 시초가 되었던 駐 소련 미국대사 조지 캐넌의 1946 2월 정기 보고서에 의하면 소련은 다분히 힘의 논리에 의한 국제정치를 추구하고 있으며 미국은 이러한 소련과의 협상테이블에서 소련으로부터 일련의 상호간의 양보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부터 시작된 냉전은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지속되고 만다. 거대한 미국의 군산복합체와 브루킹스[2] 연구소등의 정책제안은 절대적국의 사라짐과 동시에 또 다른 적국 혹은 잠재적국을 형상화하기 시작했으며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클린턴에 이르는 미 행정부의 주요 정책은 그러한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잘 대변해 준다. 조지 부시의 민주주의의 보급 정책으로부터 클린턴의 민주주의의 확대 정책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과거 미 국무장관을 지낸 올브라이트의 발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라는 말과 자신을 동일시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나라는 물론 미국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다극체제에 의한 세계정치가 미국의 이익을 제한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나토의 역할 확대를 주장하기 시작하였으며 결국 미 의회는 나토의 전세계적 군사전략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결국 나토의 전략에는 미국의 이익이 투영되어 있고 그 동맹국들은 나토의 회원국 지위의 의무이행을 위해 미국의 이익에 집중된 정책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되었다. 호프만 또한 일련의 축을 형성하는 강대국의 전략에는 반드시 그 강대국의 이익이 반영되어 있다. 라고 주장한다.[3]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라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가장하여 미국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심리적 행위에 불과한 것인가? 자본과 권력이 풍만한 집단의 이데올로기는 그들의 이익달성을 위해 거짓이익을 창출하게 된다.[4] 미국의 행정부가 전세계적 경찰국가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와 그 정치군사 행위는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거짓이익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정치심리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바르샤바 조약기구는 그 존속의의를 상실했다. 하지만 북대서양 조약기구는 지금도 존속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기능과 영향력을 변화 및 확대해 나가고 있다. 유럽내 민족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지역안보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추구하고 있으며 점차 그 영향력을 동쪽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1990년대 유고내전에 적극 개입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은 유엔 안보리에서의 반대로 좌절되는 듯 보였으나 유럽 지역안보기구인 나토의 결의를 이끌어내고 그 근거로 유엔으로부터 적법 절차에 따른 당해 책임지역에 대한 무력간섭임을 승인 받게 됨으로써 합법적 절차에 의한 전 세계적 영향력 행사를 지향하게 된다. 즉 나토가 유엔을 대신하여 그 일부 기능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고, 유엔의 개혁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2008 8월 그루지아 남오세티아과 압하지아 분쟁에 있어서 나토의 입장은 매우 호전적이었으며 미국을 필두로 하는 나토와 러시아간의 관계를 첨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시 남오세티아 지역의 평화유지군으로서 러시아군이 임무수행 중이었으며, 그루지아 군의 선제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되었고, 당시 테러와의 전쟁에 파견되어 임무수행 중이던 그루지아군에 대해 귀국조치가 내려졌다. 미국의 배려였지만 이러한 선례는 러시아로 하여금 분노를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 냉전기 1, 2차 베를린 위기에도 있을 수 없었던 추가적인 군사력 확충이라는 극단적인 정치대결구도로 몰고 간 것이다. 하지만 당해 분쟁의 국제공론화와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정책' 선전효과를 지향했던 사카쉬빌리의 추측과는 달리 미국은 이 전쟁에서 더 이상 적극적인 간섭을 자제하고 사태는 프랑스와 러시아간 해결로 마무리 된다. 미국과 러시아간에는 아직도 핵 강대국으로서의 핵억지론이 유효한 것일까? 이번 전쟁으로부터 비롯된 미국과 러시아간의 정치적 대립은 전후 세대의 핵 터부 경시와 핵 선제 공격 가능성을 더욱 크게 확대시키게 되었으며 냉전기 보다도 오히려 분쟁이 더욱 증가하고 있고, 전쟁이 정치 도구화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러시아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및 동아시아에 이르는 거대한 대륙의 조종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왔었다. 비록 냉전기 미국과의 극한 대립을 야기했던 소련이라는 실체 조차도 각 지역분쟁의 조속한 해결과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전략을 추구했었다. 냉전 이후 나토의 동진과 정치기구化 과정으로 말미암아 러시아의 정치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나토의 정책이 지속되는 바, 러시아 정계의 시각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전후세대 군사지도자가 부재한 러시아 내부적 문제로 말미암하 핵폭발에 대한 위험성을 망각한 체 핵 선제공격 가능성은 증폭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저지라는 목적으로 동 유럽내 MD 구축을 지향하고 있으며 양국간의 군비경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듯 하다.

 

결론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서 더 이상 지구상에는 무력충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칸트의 주장처럼 그 역사의 끝에는 모든 인류는 惡의 세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완벽한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유토피아적 발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인류의 탐욕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강대국은 늘 패권자로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해 주변국들은 그 패권을 노리면서 대립구도를 형성하기 마련이다. 나토의 동방확장 정책과 러시아의 지역조종자로서의 정책 추구는 결국 그 양방의 충돌로 확대되는 조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냉전과 유사한 정치군사 조약기구 즉 나토와 샹하이 협력기구 / 독립국가연합 집단안보 조약 등이 존재하고 있으며 서로 대립적 성격을 띄고 있다. 결국 작금의 나토와 러시아의 관계는 협력국면의 모습보다는 대립국면의 모습을 유지한 체 냉전시절의 미소대립과 큰 차이가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1] А. Д. Богатуров // Современная Мировая Политика 2009

[2] Фёдор Войтоловсктий, «ПРОИЗВОДСТВО» ИНТЕЛЛЕКТУАЛЬНОГО ПРОСТРАНСТРА МИРОВОЙ ПОЛИТИКИ // журнал «процессы» 2008

[3] Фёдор Войтоловсктий, «ПРОБЛЕМАТИКА ГЛОБАЛЬНОГО УПРАВЛЕНИЯ В ЗАПАДНОЙ  ПОЛИТОЛОГИИ // журнал «процессы» 2007

[4] М. А. Хрусталёв, мнимый интерес является источником появления псевдопроблем. Он начинает играть доминирующую роль при высокой степени идеологической заданност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