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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곤

초원의 전사들 - 칼미키야 공화국 유럽 대륙의 몽골리언 러시아 초원에 푸근한 바람이 분다. 지평선까지 뻗은 누런 황금 들녘은 사각이던 소리를 쉬이 죽이며 기름진 흑토에 서서히 눕는가 싶더니, 바람이 잦아지자 금세 다시 머리를 꼿꼿이 세우며 카랑카랑 살아있음을 알린다. 유럽 속 아시아, 아니 아시아의 변방을 지키는 수호자라 해야 더 걸맞을 칼미크(Kalmik)인들이 사는 곳, 칼미키야(Kalmikiya) 공화국. 이곳은 한 나라 안에서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 될 만큼 장대한 러시아 대륙의 유럽지대에 엄연히 위치하고 있지만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몽골 대초원을 연상케 한다. 일찍이 칼미키야는 칭기즈칸이 유럽대륙을 정복하며 천하통일을 노릴 때 이미 몽골리언에게 예고되었던 땅이었으며, 그의 일족들이 카스피 해로 이동하여 건설한, 그야 말로 기마족.. 더보기
볼가를 따라 거닐다 - 아스트라한 볼가 강의 종착역을 찾다 러시아 을 가다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어머니 볼가. 러시아인들은 대게 볼가(Volga)강을 이렇게 부른다. 그 시작은 모스크바 북쪽의 여린 물줄기들에서 비롯되나 카스피 해(Caspian sea)를 마주하는 하구에서는 가히 망망대해처럼 드넓은 러시아의 젖줄, 볼가. 세계에서 가장 큰 강 가운데 하나이자 유럽에서 가장 큰 강인 볼가는 러시아 서부를 유유히 가로지르며 때로는 전쟁과 원정으로 얼룩진 질곡의 역사 속에, 때로는 산업화의 이동수단이자 정신적 동력으로서 말없이 제 몫을 지켜왔다. 예컨대 흐르는 강은 말이 없다 했던가. 9월까지 이어진 폭염 속에 볼가 강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아스트라한(Astrakhan)은 뙤약볕을 피해 강변을 찾아든 인파들로 여전히 붐볐다. 강을 끼고 .. 더보기
레프 톨스토이와 그의 박물관 러시아 문학의 유산(1) 레프 톨스토이 박물관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백야의 계절 6월이 어느덧 찾아왔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터라 5월 말부터 찾아 온 봄기운이 이곳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는 더없이 반갑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이곳에선 고작 4개월여 밖에 되지 않는 터라 이때가 아니면 생명의 태동과 수풀의 우거짐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숲의 나라 러시아. 그리고 국토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숲을 사랑한 문호들. 지난 세기 러시아의 문호들은 바로 이 6월의 백야 아래 숲과 삶과 예술을 논하였다. 특히 19세기 러시아는 그야말로 문학의 황금기였다 할 수 있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최고봉이자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푸슈킨에서부터 사실주의의 거장 톨스토이와 .. 더보기
러시아 우랄산맥 기행<1> 러시아 우랄산맥 기행 우랄의 고도 페름을 가다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러시아를 동과 서로 가르는 두 개의 산맥을 꼽아보자면 우랄과 알타이를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유럽과 동양을 경계 짓는 우랄산맥은 러시아의 정신이자 문명의 발상지로 기념되고 있다. 남부지방은 저지대와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는 반면 북부지방은 해발 1800여 미터가 넘는 험준하고 높은 산들로 지세를 이룬다. 이에 비해 중부 우랄 지역은 그 경사가 비교적 완만해 예로부터 교역과 문화의 중심으로 역할 해 왔는데, 그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예카테린부르크와 페름이다. 여기에 더할세라, 우랄 주변을 둘러싸며 널리 펼쳐진 타이가 숲은 서로 경합이라도 하듯 정상의 높이가 비등한 아름다운 산맥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수자원의 보고인 카마(Kama).. 더보기
툰드라의 딸들 - 대륙의 끝을 디디다 툰드라의 딸들 - 대륙의 끝을 디디다 글․박정곤 결자해지(結者解之)라 했던가. 언제나 우리네 일상이 그러하듯 시작한 자는 그 끝을 반드시 매듭지어야 하리라. 지난겨울 북방의 땅 끝, 야말(Yamal)에 첫발을 내디딘 필자에게 북극 한계선(Arctic circle)은 이제야 유쾌한 여정을 열어주었다. 이제 이곳은 더 이상 낯선 곳도 아니며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다. 다만 계절의 지나감을 담아내고자 했던 최초의 다짐들이 드디어 결실로 다가오고 있음에 어느 정도의 숙연함만 뇌리에 담겨있을 따름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진정 조금만 더 내달리면 이 길고도 먼 기행도 그 정점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오늘도 쉼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창조주가 대지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탄생한 대지가 지구의 여섯 대륙.. 더보기
모스크바 유고 자파트 극장 변방에서 중심으로 -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백야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은 러시아인들에게 꿈과 같은 계절이다. 자정너머까지 지지 않는 해로 인해 더러는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쾌청한 날씨 아래 산책을 즐기기도 또 가족들과 인근 숲을 찾아 바비큐 파티를 열수도 있기 때문에 진정 놓치기 아까운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아이들과 함께 예술가들의 생가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보기도 하거나 화려한 야외 공연을 감상하는 등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6월은 더욱 뜻 깊은 계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모스크바는 굳이 시내 중심가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도시 여기저기에 숨겨진 볼거리와 이색 박물관, 극장들이 즐비해 있으니 이 보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가진 도시도 전체 유럽에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가운데 모스크.. 더보기
러시아 발레교육의 산실 -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 러시아 발레교육의 산실 -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 글․박정곤 순백의 의상과 화사하고도 가녀린 손끝. 발레의 명작 차이코프스키의 ‘백조’들이 살아 숨 쉬는 곳. 차가우리만치 창백하고도 절도 있는 그러나 그 감동만큼은 뜨겁기 그지없는 신체 언어. 발레의 미학을 어찌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은,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의 전범을 보여주는 것이 러시아 발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전적 예술의 한 장르로서 발레가 우리의 일상에는 그다지 가깝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곳 러시아에서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예술 장르가 다변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발레는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순수예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볼쇼이와 마린스키 등 유명 발레단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