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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료/러시아 문학 자료

레프 톨스토이와 그의 박물관

러시아 문학의 유산(1)

레프 톨스토이 박물관

 

글 및 사진 제공·박정곤

 

백야의 계절 6월이 어느덧 찾아왔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터라 5월 말부터 찾아 온 봄기운이 이곳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는 더없이 반갑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초록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이곳에선 고작 4개월여 밖에 되지 않는 터라 이때가 아니면 생명의 태동과 수풀의 우거짐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숲의 나라 러시아. 그리고 국토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숲을 사랑한 문호들. 지난 세기 러시아의 문호들은 바로 이 6월의 백야 아래 숲과 삶과 예술을 논하였다. 특히 19세기 러시아는 그야말로 문학의 황금기였다 할 수 있다. 러시아 낭만주의의 최고봉이자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푸슈킨에서부터 사실주의의 거장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이르기까지 시, 소설, 희곡의 장르를 넘나들며 러시아 작가들은 세계적인 걸작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특히 톨스토이는 모스크바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페테르부르크 출신인 푸슈킨과 도스토예프스키와 종종 비견된다. 가령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사실주의의 선구자로서 회자되는데, 톨스토이는 철학적 문학세계로 종교적인 반열에까지 문학을 끌어올렸다. 1년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6월의 백야 아래 톨스토이의 문학세계를 잠시 들여다보자.

 

 

러시아 장편소설의 산 역사 - 레프 톨스토이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를 두고 단순히 문학가 혹은 소설작가로 거명한다면 이는 커다란 모순을 야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작가이기 이전에 그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개혁가이자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백작가문에서 태어난 톨스토이는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약 30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툴라(Tula) 지방의 야스나야 폴랴나(Yasnaya Polyana)에서 1898 9 9일에 태어났다. 유감스럽게도 인자하셨던 부모님은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다. 실제로 어머니는 다섯째 자식을 낳고 난 직후 바로 사망하였고, 아버지 또한 몇 해 지나지 않아 어머니의 뒤를 따라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희미하게 남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1850년에 쓰여진 <유년시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일찍이 부모를 여읜 터라 친척들의 손에 자라난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군인으로서 생활을 시작한다. 이 시기는 그에게 많은 고찰을 하게끔 만들었는데, 특히 귀족신분으로서 그가 민중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또 창작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부터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서민들의 삶과 우화적인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라 할 수 있다.

아동들을 위한 동화에서 자전적 철학적 작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작품을 그는 남겼는데,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작품이 그의 일상에서 직접 묻어 나온 것이라 하겠다. 가령, 1882년 톨스토이는 진지하지 못했던 인생을 살았다 스스로 판단하고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며 근원적인 인간의 참모습을 찾고자 <참회록>을 집필하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은 바로 신을 알아가는 것과 민중의 생활에 융화되는 것에서 나옴을 주지한다. 1887년에 발표된 <인생론>에서 이러한 사상은 더욱 공고화되며 <안나 카레리나>(1877) 집필 당시까지 피폐했던 인간의 모습을 그려왔던 그의 작가관도 이제는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만년에 그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혹자들은 이미 그의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바, 톨스토이는 집을 나가 아스타포바라는 시골 마을의 역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마저 숭고하게 느껴지는 것은 범속과 탈 범속의 양면 사이에서 진정한 인간내면을 탐구하고자 했던 그의 세계관이 죽음에까지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그의 소설들은 시대와 무관하게 여전히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그가 쓴 희곡들은 연 중 내내 각광을 받고 있다. 실제로 희곡 <산송장>은 모스크바 국립극장(MXT)과 우 니키트스키 극장에서 수년째 레퍼토리 작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쟁과 평화>는 수십 개 국에서 자국어로 번역되어 아직도 출간되고 있다.


 

톨스토이 정원 - 하모브니키 톨스토이 박물관

대부분의 인간이 땅과 주변환경에 큰 영향을 받듯 톨스토이도 그러하였다. 톨스토이가 나고 자란 툴라 지방이 고향으로써 그의 문학적 토양을 다지게 만들었다면, 모스크바는 전성기 톨스토이가 대작을 창작하는 데 주춧돌 역할을 하였다. 톨스토이가 거처로 잡은 모스크바의 하모브니키(Khamovniki)는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번잡한 모스크바 도심에서 조용히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른바 도심 속 정원을 소유하고 있다. 작가는 1893년에서 1895년 사이에 이곳에서 살았는데 이 시기는 톨스토이의 만년이라 하겠다.

톨스토이 박물관의 건물 자체는 1800년에서 1805년 사이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백작 신분이었던 톨스토이답게 저택은 웅장함을 과시했다. 목조로 지어진 건물 외관은 그리 화려하진 않았으나 격조가 있었다. 내부는 수많은 방들과 응접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특히 13명이나 되었던 많은 자식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위한 공간이 많았다. 그 가운데 어린 아들이었던 바냐는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은 톨스토이 영지 박물관이다. 톨스토이의 저택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프리치스텐카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당대 아름다운 정원을 가진 이곳이 그와 지인들에게 더 사랑 받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톨스토이는 백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실제 이곳에서 창작된 작품은 대작으로 뽑히는 <부활> <이반 일리치의 죽음>, 그리고 희곡 작품 <산송장> 등이다.

특히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라니>와 더불어 톨스토이의 삼대 거작으로 꼽히는 <부활>은 당대 제정 러시아가 안고 있던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 내면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문제, 도덕적인 문제, 진실성에 대한 문제를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귀족으로서 사회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항한다는 것이 당시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으나 살아있는 지성으로서 톨스토이는 스스로 실천에 옮겼다. 1899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만년의 톨스토이의 모든 진액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곡 <산송장>은 독특한 창작배경을 가지고 있다. 당대 최고 극작가였던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바냐 외삼촌>이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될 무렵,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본 후 단숨에 이곳으로 달려와 자신의 작품에 임하게 된다. 정작 톨스토이 본인은 <바냐 외삼촌>이란 작품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지만, 체호프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얻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처럼 작가의 문학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큰딸 타티아나의 방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아버지가 글로써 예술세계를 표현하였다면 그녀는 그림으로써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분출시켰다. 벽면 여기저기에 붙어있는 그녀의 작품에서는 구시대 인물들의 표정이 마치 살아있듯 생생히 다가왔고, 개개 인물의 얼굴이 가진 특징들을 섬세히 곱씹고 있는 그녀의 재능은 당대 사실주의의 거장을 아버지로 두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아울러 톨스토이의 영지 저택에는 여러 지인들의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특히 세계적인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이곳을 자신의 집처럼 찾아와 톨스토이와 자주 담소를 나누었으며, 2층 응접실에 마련된 피아노에 앉아 본인의 곡을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바흐와 헨델, 쇼팽을 사랑했던 톨스토이 또한 훌륭한 피아노 연주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는 직접 왈츠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의 작품 <크로이체르 소나타> 또한 이런 배경에서 창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 분야에 재능을 보였던 톨스토이는 하모브니키 영지를 중심으로 모스크바 예술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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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에서 <산송장>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담다

하모브니키에 정착하기 전인 1865년에서 1868년 사이에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창작하는데 전념하였다. 장편 서사시라 분류되는 이 작품은 등장인물만 하더라고 수십 명에 달해 직접 도식과 가계도를 그리지 않으면 미처 개개인의 이름조차 욀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방대하다. 1812년 대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로 하여금 책에서 손을 때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바로 여기에는 톨스토이만의 매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장편 속에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인간으로서 혹은 삶에 투쟁하거나 혹은 번뇌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이러한 내용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누구나 한번 즈음 고찰해 봄직한 문제이기에 더더욱 와 닫는다 하겠다.   

특히 <산송장>의 주인공 프로타소프는 세상의 추악함을 알고는 있지만 이에 대항하여 싸워나갈 힘이 없는, 그저 고립의 세계에서 술과 망각으로 살아가다 결국 자살로 삶을 맺고 마는데 이러한 줄거리는 심리적 방황에 휩싸이기 쉬운 현대인들에게 더욱 가슴 가득 다가온다.

타오르는 여름의 태양처럼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 열정적으로 빠져보는 것도 우리네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출처: 우먼 라이프 2011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