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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러시아 카프카스 산맥을 거닐다

 

글-박정곤


3월의 카프카스(Caucasia)는 봄을 맞이하는 길목에 서 있다. 러시아에서는 3월이라 하여도 대부분의
지역이 영하권에 머무르고 있어 어느 곳이나 눈을 밟지 않고는 이동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남부 카프카스
지방은 이미 초록이 움 솟고 있어 그 풍경이 가히 봄이라 하겠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사계절의 옷을 모두
준비하지 않으면 산을 오르내리기 어려울 만큼 그 계절적 색채가 다채롭다. 실례로, 연중 한 번도 눈을 구경
하기 힘든 체겜(Chegem)과 같은 중부 산악지역이 있는 반면 1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있는 고산들도 꼬리를
물고 이어져 있으며, 또 3부 능선 아래 초원지대에는 찜통 같은 더위와 냉랭한 눈보라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있으니 또렷이 대비되는 지구의 계절변화가 이곳 카프카스에서부터 퍼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그처럼 대자연의 힘이란 실로 위대하기에 카프카스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푸른 기운을 뿜어내며 봄이 왔음을
알렸다. 두껍게 얼어있던 계곡은 그 두께가 점점 얇아지더니 결국에는 도랑도랑 골짜기를 따라 계곡물을 흘려
보내기 시작했으며, 새하얀 눈빛으로 짙게 덧칠되어 있던 산들은 마치 기지개를 펴듯 잔뜩 물기를 머금은 자갈
들을 비탈 아래로 흘러 보냈다. 그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든 야생화들은 황토 바닥이 드문드문 드러나 얼룩 진
초원 위를 점점이 수놓았으며 비탈을 따라 노니는 곰과 산양, 여우는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한껏 기지개를 펴고
있으니, 곧 온 산과 온 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변모할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 가득 찬 만물소생의 기운을 느끼기에 이보다 좋은 곳도 없으리라. 비록 춘삼월의 카프카스에
올라 상춘곡(賞春曲)을 읊조릴 일은 없을 터라도 구름 위 봉우리에 걸터앉아 널리 세상을 내려다보며 잠시
나마 호연지기를 길러본다.

구름에 쌓인 카프카스 봉우리. 카프카스에서는 비교적 낮은 축에 속하는 돌산이지만 구름에 둘러싸인 모습이
신령한 느낌을 준다.



불멸의 카프카스

카프카스. 우리에겐 톨스토이의 소설 <카프카스의 포로들>로 더 잘 알려진 곳이라 하겠다. 해발 5000미터
이상의 준봉이 다섯 봉우리나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는 전체 유럽에서도 가장 높다는 엘부르스(5642m)에서
부터 노아의 방주가 신비스레 족적을 남긴 아라라트(5165m)에 이르기까지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고산들이
여기저기 위치하고 있다. 그 이름의 유래처럼 ‘구름을 잡는 산’이라 명하듯 어디가 하늘이요 어디가 땅인지
실로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여기에 북(北)카프카스를 가로지르는 체겜(Chegem)강과 테렉(Terek)강, 말카
(Malka)강, 그리고 오색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수많은 폭포들이 즐비하여 있으니, 그야말로 신이 선물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지구상에 이처럼 아름다운 원시 산림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거의 드물 것이다.

러시아의 우랄(Ural)산맥이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면 이곳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아조프(Azov)해와 동계올림픽이 예정된 소치를 낀 흑해가 카프카스를
감싸고 있으며, 동으로는 페르시아와 연결되는 카스피(Caspy)해가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에 속한 아브하지야(abhaziya)와 체첸등의 북 카프카스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와 같은 독립
국가들로 이루어진 남 카프카스로 다시 구분되니 카프카스는 진정 러시아 속‘소아시아’와 같다. 민족적으로
살펴보았을때도 이곳에는 카바르지아와 체첸, 아브하지아, 잉구쉬, 그바르쉰 등 50여 개가 넘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개개 민족은 고유한 언어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는데, 우리 교포들 또한 소수지만 동아시아인을
대표하며 카프카스 지역 곳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기원전 10000년 전부터 인류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은 고대 그리스신화에도 종종
등장하곤 하였다. 대표적으로 이아손의 황금양털 이야기가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가 메데아를
만난 곳이 바로 이곳 카프카스다. 엘브루스로 향하는 길목에는 기원전 5000년 경 형성된 인류의 돌무덤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데 오랜 역사의 풍파에도 불구하고 유적들은 원형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처럼
신화적 바탕에 아랍의 문명과 유럽 문명이 공존하는 동시에 러시아적 색채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진정한 다문화 세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룩되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자손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려 살았다하는데, 그의 많았던 자손들만큼 다양한 문화가 이곳을 중심으로
융성하였다 사라지곤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과 언어는 카프카스라는 모태를 두고 어우러졌던 것이다.


무슬림과 크리스찬 정신의 공존 - 체겜

오늘날 카프카스의 종교를 떠올릴 때 우리는 두말 할 나위 없이 모슬렘을 떠올릴 수 있다. 카프카스
남쪽의 페르시아 왕국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민족들이 이슬람교를 숭배하고 있으며 이곳에 거주하는
소수 러시아인들만 러시아 정교를 믿고 있다. 실제 이슬람 축일이 되면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슬람교도
들이 이곳으로 찾아와 축일을 기린다고 하니 그들에겐 영산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 속에 기독교의 흔적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카프카스 지역도 있으니 바로 날칙
(Nalchik)을 수도로하고 있는 카바르지노 발카리아 공화국(Republic of kabarzino-balkaria)이다.
이곳은 스탈린 치하 카바르지노 민족 자치구와 발카리아 민족 자치구가 합병되어 만들어진 러시아
연방 내 소(小)공화국이다. 소비에트 후반까지도 이곳에는 러시아정교 교회가 많이 남아있었으며
수백 년 전 건립된 정회 터도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이들의 역사 또한 범상치 않다.

1943년 스탈린은 나치의 에델바이스 부대에 협조를 했다는 이유로 발카리아인들을 모두 국외로 추방
하였다. 이들은 끝까지 나치에 투쟁하여 자신들이 조국을 지켜냈음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미
명령이 떨어진 뒤라 마을 인원 전체가 한명도 남김없이 카자흐스탄 등지로 추방당했다. 그러기를 14년,
1957년에 이르러서야 이들은 복권되어 조국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분쟁이 발발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몰아 낸 당사자가 바로
카프카스 아래에 사는 카바르지노인들이라 주장하였다. 진위는 알 수 없으나 정작 나치에 협조한 이들은
카바르지노인들이며 이들이 자신들의 화를 피하기 위해 발카리아인들을 몰아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아랫마을의 카바르지노인들도 자신들의 입장이 올바르다 고수하고 있으니 벌써 반백년을 넘긴 두 민족
간의 대립은 쉽사리 끝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여야했던 이들이 돌아왔을 당시 상황은 뻔하였다. 집안의 물품은
모두 오간데 없고 유물들은 곳곳이 도굴을 당한 뒤였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그들이 성스럽게 모시는
800년을 훌쩍 넘긴 조상 묘와 아리아 문명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특히 볼카리아인들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으로서 고산족이 살고 있는 마을‘체겜’(Chegem)을 들 수
있다. 해발 1600미터에 자리한 이 마을은 카프카스의 계곡을 타고 형성되어 있는데 불과 300명 남짓한
인구가 전부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사는 마을은 곳곳이 유적지였다. 친절히 이방인들을 맞이하며 안채를
허락했던 촌장 나지르의 집은 중세 무덤 터에서 불과 50여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가 말하길,
집에서 백여 미터 가량 산을 타고 더 올라가면 10세기 경 건립되었던 교회 터가 남아있다고 하였다. 현재
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슬람교도지만 기독교적 색채가 전통적으로 강하였기에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고 하였다. 이는 그가 베푼 친절에서도 충분히 보였다. 실제로 마을 주민 가운데 대부분은
환갑을 훌쩍 넘겼거나 그 즈음의 연배였고 이삼십 대의 청장년층은 수십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구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피어났다. 일흔을 넘긴 마을 촌로
들은 휘파람을 불며 양을 몰아 카프카스 언덕 위로 올랐고 머리 위 매암 도는 독수리 떼는 기류를 타고 한껏
뽐을 내듯 비행하였다. 가는 곳곳마다 자신들이 키우던 양을 내어주며 언제라도 방문하라던 체겜 주민들
에게서는 마치 우리나라 시골에서 우러나온 듯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그들의 표정 속에는‘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알라를 향한 굳은 믿음이
공존해 있었다. 마치 그들이 즐겨 마시는 아이란(Airan-카프카스 특산의 요구르트)처럼 체겜 마을 주민들은
특유의 청량함과 신선함으로 머릿속 깊이 카프카스를 잊지 못하도록 하였다.



전쟁과 평화, 그리고 카프카스의 미래

이처럼 아름다운 산야를 자랑하는 카프카스지만 근대의 역사는 실로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카프카스는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갖은 전쟁으로 언제나 총성이 멈추지 않았던 곳이기도 한데 그 대표적인 지역이
바로 잉구세티야와 체첸, 다게스탄 지역이다.

이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카프카스는 끊임없는 내전과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
테러도 동쪽 카프카스 지역에 사는 이들의 소행으로 밝혀졌는데 비단 이뿐이 아니다. 최근 10년 동안 카프
카스에서는 내전과 폭탄테러로 한시도 편할 때가 없었다. 이곳에 사는 소수민족들 가운데 일부 과격분자들은
자주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져가며 조국의 독립을 수호하고자 하였는데 소비에트 붕괴 이후 본격적으로
이와 같은 분쟁은 시작되었다. 실제 1991년 소비에트 해체 이전부터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는 영토분쟁이
일어났으며 이후 오세티아와 잉구세티아에서도 민족 간의 충돌이 있었고 아브하지아를 두고 그루지아와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체첸 전쟁은 아직도 그 마무리가 종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곳곳에서는 새로운 역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대규모 재건계획에 따라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는
작업이 본격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인상 깊은 곳은 바로 체겜 학교이다. 체겜 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생부터 대학입시를 앞둔 학생들까지 모두 합쳐봐야 고작 사오십 남짓한 학생 수에 건물 곳곳에는
무너져 내린 것을 보수한 흔적들로 가득하다. 실제 예전에 쓰이던 학교건물이라던 곳은 지붕과 기둥이
포격을 맞은 듯 모두 무너져 내려 벽돌로 쌓아올린 담벼락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담장 앞에 자라난
생명체로서는 유일한 소나무 몇 그루가 너무나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야 겨우 새 건물이
건조되어 학생들이 안전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카프카스를 떠나지 않았으니 아이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복도를
뛰어 다니며 장난스레 필자를 쫒아 다니던 아이들은‘까레야’(러시아어로 한국을 의미)를 외쳐대며 호기심
반 장난 반 우리를 맞이하였다.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들은 저마다 교실에 들어가 어느새 복도는 조용해졌다. 수십 개의
언어와 민족이 어우로진 카프카스다 보니 민족 고유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겠냐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이곳에서는 민족 고유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보였다. 실례로 체겜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체겜어를 별도로 배우고 있었다. 자신을 튜르크의 후손이라 부르던 몇몇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언어가 자신들의 언어라며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하였다. 또한 몇몇은 쑥스럽게 손을
내밀며 다듬어지지 않은 영어지만 실력을 멋지게 자랑하였다. 더 이상 이들에게는 전쟁도 아픔도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학교에 있는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종례를 마치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기숙학교가 없기에 해발 3000미터에서 양을
치며 생활한 다는 아이들도 걸어서 집을 향하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이 아이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인구가 얼마 되지 않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집안일을 도왔다. 양과 소의 목축이
대부분의 생계수단인지라 아이들 또한 그 실력이 대단하였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대부분 도회지로 나가
생활하거나 마을에 남아 전통혼례를 올린 후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간다. 아직도 남아있는‘보쌈’문화에는 적은
인구임에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들이 지켜나가려는 전통 속에 카프카스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으로 거듭날 것이며 카프카스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펼쳐나갈 것이다.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카프카스의 전설은 불멸로 남을 것이다.
출처: 월간 우먼 라이프 2011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