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시아 정보/러시아 대학 소개

러시아 발레교육의 산실 -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


러시아 발레교육의 산실 - 볼쇼이 발레 아카데미


글․박정곤


순백의 의상과 화사하고도 가녀린 손끝. 발레의 명작 차이코프스키의 ‘백조’들이 살아 숨 쉬는 곳. 차가우리만치 창백하고도 절도 있는 그러나 그 감동만큼은 뜨겁기 그지없는 신체 언어. 발레의 미학을 어찌 단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은,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인간에 의한, 인간이 창조하는 예술>의 전범을 보여주는 것이 러시아 발레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전적 예술의 한 장르로서 발레가 우리의 일상에는 그다지 가깝게 다가오지 않지만 이곳 러시아에서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관객과의 거리두기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예술 장르가 다변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발레는 과거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순수예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볼쇼이와 마린스키 등 유명 발레단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볼쇼이 아카데미는 발레교육의 산실이자 가장 많은 발레 마이스터를 배출해내는, 다시 말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으뜸이 되는 곳으로 꼽힌다.

이처럼 고상함 속에 난해함을 안고 있는 백의 예술(白衣 藝術) 발레의 본고장에서 거장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은 멀게 느껴지지만 그 거리감을 넘어서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러시아 발레의 산 역사

발레 아카데미의 역사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유구하다.

그 원류를 찾다보면 200여년이나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1763년 예카테리나 2세의 명(命)으로 러시아에는 교육원이 신설되는데 1773년부터 무용 수업이 교육내용에 추가된다. 바로 이곳이 발레 아카데미의 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79년 예술 교육가 L. 파라디스(L. Paradis)는 최초로 졸업생들을 배출하였는데 1784년에 이르러 이 졸업생들은 페트로프스키 극장으로 옮겨가 전문적인 발레리나로 활동하게 된다. 1806년부터 학교는 제국극장 산하 예술학교의 일부로 포함되었으며 이때부터 발레 분야는 여러 예술분과 가운데 가장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1840년대에 있었던 러시아의 대배우 M. 쉬프킨(M. Shepkin)과의 조우는 발레 연구자들의 창조적인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를 두고 역사가 바흐루쉰(U. Bahrushin)은 <당대 러시아의, 특히 모스크바의 발레는 독립성을 확보하였다. 현재 러시아 발레는 외국 극장이 아니라 러시아의 연기자들에 의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적인 무용 학파에 의해 독창적인 레퍼토리를 획득하였다는 것이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이렇게 발전해 나간 발레 학교는 소비에트 시대에 들어와 독립된 발레 아카데미의 형태를 갖추었으며, 1932년에는 A. 모나호프와 A. 체크르이긴에 의해 개작된 <호두까기 인형>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긴 역사만큼 든든한 교육적 배경을 소유한 발레 아카데미는 소비에트의 붕괴로 혼란스러웠던 시기도 잘 극복해 나갔으며, 2001년 볼쇼이 극장의 예술 감독 B. 아키모프(B. Akimov)의 총장 추대를 기점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매년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현재 발레 아카데미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안무학(按舞學)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 무대에서의 경험을 통한 발레 마이스터의 양성에 무엇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정규 과목으로는 클래식 무용(우리가 알고 있는 발레-필자 주) 외에도 전통 민속무용, 재즈를 비롯한 현대무용 등 응용된 안무의 습득을 위한 수업도 교육과정 속에 포함되어 있다.    

비단 그 명성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 1990년대에는 일본의 도쿄와 미국의 콜로라도, 터키의 이스탄불 등지에서 러시아 발레 아카데미의 교육을 이어받은 학교들이 개소되었으며, 연수를 받으러 오는 단체만 하여도 수십여 곳에 이른다. 이처럼 이곳을 방문하여 정통한 발레교육을 전수받고자 하는 이들의 수가 끊임없이 이어져 현재까지도 발레교육의 순례지로 추대 받고 있다.


예술계의 우먼파워 - 총장 마리나 레오노바

예로부터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먼파워'가 강한 나라가 러시아다 보니 여성 인력의 예술 참여도 또한 실로 비중이 크다. 실제로, 예술계에 종사하는 디렉터들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이며,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을 인정받는 여배우들도 ‘공훈배우’라는 명칭을 가지고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에게 ‘빈사의 백조’로 잘 알려진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를 위시하여 니나 소로키나, 예카테리나 겔체르, 현재 영화배우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아나스타시아 볼로츠코바 등 걸출한 실력자들이 역사 속에 아우라를 창조해 오늘날의 예술 강국 러시아의 무대를 이끌었다. 이처럼 러시아 발레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여러 여성 지도자와 예술인들의 몫이 큰 공헌을 하였다.

앞서 언급된 거장들이 지난 세기 러시아 발레에 반석이 되었다면 오늘날 러시아 발레의 지주(支柱)로서 역할 하는 이들도 있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발레 아카데미의 총장인 마리나 레오노바(Marina Leonova)다.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국민 예술가>라는 칭호를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그녀는 소비에트 시절 유명한 발레리나로 직접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소비에트에서 가장 훌륭한 발레 교육자 가운데 한명이라는 명성을 쌓기도 하였다. 2002년부터 현재까지 이곳 아카데미의 총장으로서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는 삶의 황금기를 오로지 발레 한길로 걸어온 거장이기 이전 수행자적 자세로 삶을 닦은 장인의 숨결이 묻어 나온다. 

바쁜 일상 가운데 시간을 마련하여 준 점에 감사를 전하며 필자가 먼저 들어간 곳은 그녀의 집무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계를 한곳에 모아둔 듯 방안 가득 장식되어 있는 각국의 민속품들이 눈을 놀라게 했다. “저 또한 멀리 한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찾아준 여러분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라며 말문을 열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주었다. 몰도바 출신인 그녀가 모스크바까지 와서 ‘국민 예술가’라는 칭호를 얻기까지에는 꽤나 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어린이 발레단에 그녀를 보낸다. 이것이 그녀가 발레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레오노바 총장은 발레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이지만 무대라는 것은 언제나 내 방처럼 가까이 느껴졌죠. 하루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도 바로 치열한 연습 후에만 설수 있었던 무대에서의 시간이죠.” 마치 당시의 시공간으로 회귀라도 한 듯 레오노바 총장의 눈에는 유년기에 대한 반추로 금세 가득 찼다.

“모스크바로 상경한 이후에도 발레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국립예술 아카데미에서 고등 교육을 받았죠. 힘들기도 하였지만 발레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삶의 기쁨이었죠. 이후 이곳 발레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지속하며 한 사람의 예술가로 거듭나는 수련에만 오로지 매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유명 무대에서 발레리나로 활동할 수 있는 영예를 얻기도 했습니다.” 자신에 대해 내세우기가 겸연쩍은 듯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1969년에서 1989년 사이에는 프로 발레리나로 활동하였는데,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은 볼쇼이 극장과 크레믈린 극장에서 발레 솔리스트로 활동하였을 때죠.”

발레리나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볼쇼이 극장의 대무대도 그녀에게는 더 이상 머무를 장소가 되지 못하였던가. 30여 년간의 현장 경력을 접고 1991년부터 그녀는 볼쇼이 아카데미에서 클래식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녀의 실력만큼 학계에서도 인지도가 높아 1996년에는 정교수로 임용되었으며, 이후 몇 년 상간에 부총장을 거쳐 2002년부터는 총장의 직분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이런 그녀에게도 남은 꿈이 있으니 다름 아닌 후학(後學)들의 ‘예술에서의 올바른 인생설계’가 그것이다. “발레를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느 누구도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많죠.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지만 두 바퀴로 당당히 서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에 달려있으니까요.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게으름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끊임없는 노력! 이것만이 자신의 벽을 넘고 진정한 발레리나로 거듭나기 위해 통과해야할 관문을 열수 있는 열쇠라 할 수 있죠.” 누구보다 강한 열정으로, 누구보다 성실히 발레에 임했던 레오노바 총장이기에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이곳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삶의 금언(金言)으로써 와 닿는다.  

1990년대 초반 자신이 지도했던 한국 유학생들이 지금은 본국으로 돌아가 안무가와 교육자로서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며 자국 학생들 못지않게 한국학생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잊지 않았던 레오노바 총장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선교육자를 향해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나무들의 보금자리 - 발레 아카데미

실제 발레 아카데미에서 학업을 쌓고 있는 학생들의 연령층은 5-6세에서부터 23-24세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전공 또한 전통 민속 무용에서 클래식 발레, 현대 무용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다양하다. 조기 교육을 정식 학교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점 또한 우리 교육계에는 하나의 본보기로 작용한다. 레오노바 총장의 칭찬이 의례적인 것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먼 이국땅에 날아와 유학 중인 우리나라의 청소년 발레리나들이 이곳에서 열심히 수학하고 있었다. 특히, 금년 9월 일본 나가노에서 거행되었던 국제 발레콩쿠르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등 2개 부분에서 입상한 안채현(16) 양은 미래 한국 발레의 위상을 세계에 펼쳐 보일 유망주로서 자신의 몫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세계무대에서 여러 뛰어난 발레리나들과 경합을 벌이고 싶다’는 당찬 꿈을 안고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미래를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채현 양과 같은 우리의 꿈나무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발레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여도 좋을 것이다.


참고 및 편집: <우먼 라이프> 2008년 12월호

UeQ-W3QDw4LtKPvIUJW1sVzgItK2L2mSlOlDRCqgm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