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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타이가의 지난 여름

 

타이가에서의 지난여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코미 처녀림>에 빠지다

 

·사진 박정곤

사진 제공 이용택 다큐멘터리 전문 카메라 감독

 

 

 

도끼와 낫, 그리고 배를 저을 노와 삿대 한 자루. 도시생활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이따금 문화체험을 통해서나 접해볼 수 있는 도구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니. 오늘날 글로벌리즘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상에 외부인과의 접촉이 전혀 없이 살아가는 소수민족 혹은 원주민이 어디 있을까 만은 그럼에도 스스로의 전통적 삶을 고수하며 문명의 이기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으니, 이는 바로 타이가 숲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른바, 숲의 수호신 코미(Komi) 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코미 인들이 살고 있는 여름 타이가의 일상이란 그지없이 척박하면서도 반면 어느 때 보다 한가롭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처럼 온 마을에 울려 퍼지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장작패기에서부터 저녁 아궁이를 지피기 위한 건초 베기 작업에 이르기까지 소박한 시골의 전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타이가의 하루. 여름 타이가에서는 사방을 빼곡히 둘러싼 울창하고도 푸르른 숲과 더없이 높고 깨끗한 창공 외에는 아무것도 큰 의미를 가지지 않기에 인간의 존재란 이곳에서만큼은 그야말로 한없이 작아진다. 그럼에도 타이가는 숲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들이 부족함 없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언제나 변함없이 삶을 지탱해주니 이보다 훌륭한 비밀창고도 따로 없다 하겠다.

본지를 통해 필자는 한가득 눈으로 덮인 겨울 타이가의 전경을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이번 호에서는 아직 대한민국에 단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코미 타이가 처녀림의 여름 전경과 우랄의 성산 만푸푸뇨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자연과 동화될 준비가 된 독자라면 함께 비밀의 숲으로 떠나보자.

 

코미 타이가 원시림에서 가을을 맞이하다

가을을 기다리는 모스크바의 정오는 어느 때보다 분주하였다. 한 여름 동안 기나길었던 휴식과 다차(Dacha-러시아식 별장)에서의 일상으로 재충전된 시민들은 자신의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이어갔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을 학수고대하던 신입생들은 학업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로 의기가 충만하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도모데도보(Domodedovo) 국제공항은 여름 한때 보다 비교적 한가로운 모습을 보였다.

시베리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우랄 타이가로 향한 길은 처음부터 설렘으로 가득하였다. 비록 까다로운 기상과 잦은 연착으로 채 시작도 전에 기다림에 익숙하게 만들긴 하였지만 남부의 코카서스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그리고 북방의 수도 페테르부르크 등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코미 처녀림은 아직까지도 외부에 얼굴을 비추지 않은 비밀스런 곳이기에 기다림이란 기꺼이 감내해야 할 몫으로 생각되었다.

오랜 연착 끝에 두어 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코미 공화국의 수도 식티프카르(Syktyvkar)에는 숲의 향기가 물씬 피어났다. 인구라 하여봤자 고작 20만이 조금 넘는 자그만 수도이지만 거대한 면적의 공화국을 다스리기에 충분한 저력이 어딘가 모르게 잠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숲에 대한 찬사도 잠시, 비행 중 하늘에서 바라본 식티프카르 주변의 숲이 눈에 들어올 때는 이제 장대한 여정의 시작을 곧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이곳에서 다시 장장 10시간을 버스로 달려야만 겨우 타이가 원시림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달할 수 있다 하였다. 그만큼 타이가는 이방인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길의 끝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시계가 확 트인 강변 선착장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곳 주민들의 주요 이동로인 일리치(Ilych) 강이었다. 우랄을 끼고 휘이 굽이치는 일리치 강은 코미 공화국을 대표하는 강으로서 페초라 강의 첫 번째 지류이다. 코미어로 일리치는 머나 먼’, 혹은 긴 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우스치 일리치 마을 근처에서 페초라 강과 갈리게 된다. 411킬로미터에 달하는 일리치 강은 폭은 넓지만 수심은 그리 깊지 않은, 그러나 기암괴석의 절벽을 끼고 끊임없이 굽이치는 계곡의 형세가 더없이 멋있는지라 풍광만큼은 깊이가 있었다. 일리치 강은 한 겨울 동안 쌓인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이 강수의 대부분임에도 아직도 절벽 아래까지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한여름 가뭄 때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고 물골을 유지했다 하니 겨울 동안 내리는 강설량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이 되면 벌써 얼어붙어 이듬 해 4월이 되어야 겨우 녹을 준비를 하는 일리치 강은 덕분에 한 여름에도 멱을 감기 힘들 정도로 물이 아주 차다. 또한 강 전역이 1급수이다 보니 도심 인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귀어종들이 많이 서식한다. 더욱이 지난여름에는 대양에서부터 세차게 올라온 연어들이 강을 가득 메울 정도로 풍성했었다고 지역 주민이 전하였다. 이처럼 북극해로 유입되는 1800킬로미터가 넘는 장대한 길이의 검푸른 페초라 강도 일리치 강의 유입이 없이는 제 명성을 유지할 수 없다 하니 일리치 강은 시베리아 타이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수자원이다.

바닥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깨끗한 강물은 빠른 유속을 뽐내며 흘러갔으며 물을 먹기 위해 강변에 찾아든 곰과 순록, 다람쥐는 인간의 인기척에 놀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곤 하였다. 저 강을 따라 끝까지 흘러가면 북극해에 다다를 수 있다 하니 언제가 한번은 보트에 몸을 싣고 북극해로의 항해에 도전하고픈 야심찬 열망이 생기기도 하였다.

 

 

 

숲에서 숲을 보지 못하다 <페초라-일리치 국립 생태보호구역>

타이가 원시림으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프리우랄스키 지구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숲길을 따라 달려야 했는데, 눈 앞 가까이 다가온 빼곡한 숲으로 정작 우리는 숲에 들어섰음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다만 빠르게 지나가는 아름드리나무들만이 이곳이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 자연임을 인지하게 하였지만 드넓은 숲의 모습은 높은 언덕에 오르지 않는 이상 관망하기가 어려웠다. 누가 말했던가, 숲에서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봤노라고. 눈앞에 주어진 것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간의 시야가 가지는 오만함과 어리석음에 숲길은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일리치 강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다시 12시간 동안 상류를 향해 배를 타고 이동해서야 겨우 페초라 일리치 국립 자연 생태 보호구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동 중 지나치는 곳곳마다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는데, 인간의 흔적은 상류로 올라갈수록 점차 미미해졌다. 주변에 들리는 소음마저 나무가 서로 부딪히거나 짐승이 뛰어다니며 내는 발자국 소리들, 혹은 자연 그대로에서 빚어진 마찰음 뿐, 인위적인 그것이란 그저 강을 타고 시원스레 달리는 목조 보트가 웅웅이며 토해내는 모터소리 밖에 없었다. 오색의 들꽃에 키 높이까지 무성히 자라난 무명 풀들로 뒤덮인 강변에 차려진 베이스캠프는 널판으로 만든 서너 채의 목조 가옥과 한 채의 통나무집으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을 넘긴지라 어스름해지기 시작하였다. 마침 굴뚝을 타고 모락모락 올라가는 연기를 바라보자니 이내 시장기가 생겨 오늘은 더 이상 행군을 강행할 수가 없었다.

저녁식사를 앞두고 둘러 본 베이스캠프 주변은 자연그대로의 신선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타이가 너머로 엷게 걸린 노을은 그지없이 아름다웠고 강줄기를 타고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은 먼지 가득 쌓인 폐포를 한순간에 정화시켜 주었다. 백야의 기운이 남아있던 탓에 이내 찾아온 밤의 적막마저 두려움이 아닌 미명 속 낭만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야가 이제까지 지켜진 데에는 사실 인간의 의지도 들어있다. 환경 자원에 대한 중요성을 일찍이 자각한지라 러시아에서는 1930년에 이미 국가적인 차원에서 페초라-일리치 지구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후 1995년에 이르러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유산, 즉 세계 자연유산에 <코미 처녀림>이란 명칭으로 등재된 이곳은 아직 인간의 발길이 한 번도 닫지 않은 곳들로 가득하다. 특히 겨울이면 사냥을 위해 사사치 뒤지듯 여기저기 숲을 따라 종횡하는 사냥꾼들마저 미처 발을 들이지 않은 곳이 허다하다하니 그 숲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더더욱 신비로운 모습을 감추고 있는 코미 원시림은 미지에 대한 도전정신과 호기심,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이곳에는 특히 족제비와 담비, 수달 종류의 동물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제정 러시아 때에는 현금을 대신하여 족제비의 가죽이 물건의 시세를 가늠하며 통용되기도 하였으며 이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자연생태 공원 내에서는 전연 사냥 행위가 금지되어 있다.

지역적으로 보았을 때,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우랄 산맥의 북부에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는 해발 1천여 미터를 넘는 산들이 가득하다. 남부 시베리아의 예카테린부르크와 페름, 코미, 한티만시스크, 그리고 땅 끝인 야말과 바이다라츠크 해에 이르기까지 약 2천여 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길게 뻗어있는 우랄 산맥인지라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전역이 험준하고 높은 고산으로 이루어져있겠거늘 하지만 기실 우랄에서 1000미터를 넘기는 준봉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넓은 산맥을 자랑하는 우랄의 최고봉이래야 고작 1850미터밖에 되지 않는 <나고르나야> 산이 전부이니 이는 제주도의 한라산보다도 100미터나 낮은 높이이다.

그러나 이곳 북부 우랄만큼은 예외이니 이곳에서부터 극지역 우랄 사이에는 산악 전문가도 쉽게 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고 험준한 산들이 즐비해 있다. 전체면적 721,300헥타르에 달하는 보호 구역은 코미 처녀림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 규모는 대한민국 국토의 10퍼센트에 거의 달할 정도로 넓은 면적을 소유하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타이가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한다는 것은 더없는 행운이자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달콤한 밤은 여기까지였으니.

 

 

우랄의 정상에 올라 <만푸푸뇨르>와 대면하다

생태보호 구역에 들어온 우리는 아름다운 산하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문명사회에서 어느 하나 인간의 손이 닫지 않은 곳을 찾기란 쉽지 않겠으나 눈앞의 숲은 가히 그 누구도 디디지 않은 처녀지로 가득하였다. 연중 푸른 소나무가 늘 울창이 자라고 있어 그 신선함이란 한 치도 퇴색할 때가 없었으며, 길게 늘어진 백색 기둥의 자작나무군은 한낮의 열기로 지친 몸에 시원함을 더해 주었다.

그렇지만 채 수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의 경탄은 이내 비장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실제로, 우랄을 두르고 있는 타이가를 뚫고 정상 만푸푸뇨르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힘겨운 여정이었다. 여름의 타이가엔 길 자체가 없는지라 대부분의 이동은 강을 따라 배로 이루어지거나 소로 길의 우거진 풀을 뚫고 헤쳐 나가야만 한다. 가령, 험한 물줄기와 얕은 수심으로 인해 소금쟁이처럼 생긴 가늘고 긴 나무 보트가 이따금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쓰이기는 하나 간혹 어느 구간에서는 배가 이동하기 힘들어 탑승객들이 강에 뛰어내려 밀고 당기고 해야 하는 곳도 적지 않으니 유람선에서 즐기는 관광을 꿈꾸는 이들에겐 그리 만만치 않은 여정이라 하겠다. 더욱이 자연 생태 보호구역 내에서는 예외가 없는 한 모든 이들에게 도보를 원칙으로 하며, 입구에서 만푸푸뇨르까지 이동하는 데만 통상 이틀 이상이 걸린다.

이른 아침 시작된 산행은 시작부터 강행군에 강행군을 거듭했다. 차와 흑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한 일행은 지겨우리만치 끝없이 펼쳐진 늪지대를 헤치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진군했다. 한 걸음을 띄기가 무섭게 다른 발이 빠지니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을 터. 그 와중에 군데군데 출현하는 곰과 순록, 오소리의 발자국들은 긴장 속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무성한 풀로 덮인 오솔길은 쓰러진 통나무와 늪으로 자주 끊어졌으며 인솔하는 전문가가 없이는 가는 곳이 길인 줄 전혀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거의 저녁에 달했을 무렵, 100여 미터 가량의 낮은 언덕의 정상에 우리가 위치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언덕 아래로 샛강이 흐르고 있어 거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밤을 묵어야 했다. 밤새 텐트 주변에서는 갖가지 짐승들의 우는 소리와 소스락거리는 기척으로 야생에서의 활기가 그대로 느껴졌으나 주간의 행군에서 온 피로로 인해 누구 하나 뒤척이는 이 없이 곧장 숙면에 빠져들었다.

날이 밝고 드디어 행군의 마지막 코스가 시작되었다. 오늘은 기어이 정상 만푸푸뇨르까지 도달하여야 한다. 이제 남은 코스에는 지금까지의 여정 가운데 가장 힘든 과정들만 남아 있었다. 한층 더 경사가 가팔라진 길은 벌레와 더위와의 싸움으로 지친 몸을 더욱 숨 가쁘게 하였고 살이 얼어붙도록 차가우면서 미끄러운 바닥의 시내는 도강의 어려움을 한 것 더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머릿속에 아무런 잡념조차 머무르지 못하고 무념무상에 가까워지던 찰나 드디어 숲이 갈라지고 시야가 확보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방이 오로지 숲인지라 이곳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의미를 갖지 못하였다. 그러다 우연찮게 물끄러미 돌아 본 아랫길은 감탄일색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초록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지평선 너머까지 끝을 모르고 이어진 숲은 미처 한눈에 담을 수조차 없을 정도였으며, 발아래 깔린 나무 한그루 한그루의 또렷한 그림자는 마치 뜨개질처럼 엮이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를 방불케 하였다. 진정 생에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장관이자 소름 돋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자연의 민낯에 두려움마저 자아낼 정도였다. 이 길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니 뿌듯하면서도 아찔하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다. 지금부터는 돌 자갈이 두텁게 깔린 암반층을 뚫고 나가야 했다. 이미 불어터진 발바닥은 조그만 충격에도 고통을 심하게 느꼈고 목은 말라붙어 침을 삼키기가 힘들 정도였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눈앞에 다가온 정상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힘을 빠지게 만들었으며 아래쪽으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장관의 풍광과는 달리 머리 앞 정상은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방향 정치조차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럼에도 목표했던 정상 만푸푸뇨르에 다다르지 않고는 하산할 수 없기에 무거운 발걸음을 마치 앞으로 내던지듯 조금씩 나아갔다.

얼마만큼 갔을까 바닥의 디딤이 전과 달라졌다 느껴지던 찰나 달그락거리던 자갈소리가 멈추고 무언가의 기다란 그림자가 머리 위를 엄습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 본 전방에는 상상 그 이상의 신비한 존재가 서 있었다. 그렇다. 정상에 얼마나 다가간 지 미처 생각할 여유조차 없던 터에 이미 신비의 석상 만푸푸뇨르에 도달했던 것이다. 30여 미터에서 42미터에 이르는 일곱 개의 거대 석상들은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고 세찬 바람에 이동을 바빠하는 안개와 구름은 성지 만푸푸뇨르의 전경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처음 찾아 온 객이라는 보호구역 관리인의 말에 뿌듯해지는 가슴을 감출 수 없었다. 내일이면 비록 하산하여야 하나 오늘 만큼은 정상에 다다른 기쁨을 만끽하리라 생각하고 이제껏 지고 온 긴장감을 발아래 놓인 타이가로 가벼이 던져 내렸다. 산장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만푸푸뇨르에 관한 전설과 유래에 대해 다시 일행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일찍이 한티족의 민족 기원 설화가 만푸푸뇨르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더욱 벅찬 감격과 함께 다가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에 겸손함을 아끼지 않아야 함은 당연한 처사일 터. 두 눈 가득 타이가의 여름 풍경을 담고자 애써 봐도 그 모자람이란 스스로를 자꾸만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저 눈앞에서 마주설 수 있었음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할 테니. 우랄의 정상에서 만푸푸뇨르와 대면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쉽지 않을 하산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