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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료/러시아 연극 자료

러시아 2012년 공연 소식(1)

러시아, 2012시즌의 막을 올리다!

글·사진 박정곤

2012년의 시작을 알린 크렘린의 종소리가 채 울림을 마치기도 전에 러시아의 공연 시즌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얼마 전 재건축을 마치고 오랜 잠에서 깨어 난 볼쇼이 극장을 비롯하여 창단 80주년을 맞이한 국립 오브라초프 중앙 인형극장, 새로운 레퍼토리로 2012년 시즌의 문을 연 모스크바 예술극장(MAT)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공연 예술계는 살을 에는 시베리아의 강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이들 대표 극장들의 신년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2012년 시즌의 새로운 도약 - 볼쇼이 극장

2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볼쇼이 극장이 장장 5년에 걸친 리모델링 공사를 끝내고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하 공연장을 비롯하여 일곱 층의 관객석에, 또 일곱 층의 무대 장치를 위한 공간까지 포함하여 총 14층에 달하는 유럽 최신 공연전문 극장이 탄생한 것이다. 개관 당일에는 러시아 대통령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선두로 멀리 미국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배우인 모니카 벨루치가 찾아오는 등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 축전을 전하였다. 더욱이 고국의 발레와 음악예술을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러시아 예술의 보고와 같은 곳이었으니, 이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준 예술 애호가들에게 감사라도 하듯 볼쇼이 극장은 발레와 오페라, 그리고 현대 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장르에 걸쳐 명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국립극장이라는 특성상, 볼쇼이 극장은 발레와 오페라, 그리고 콘서트를 담당하는 오케스트라 분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단연 발레라 하겠다. 가령, 2012년 시즌 레퍼토리에는 러시아 고전 발레인 P.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와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자리하고 있으며, 외국 작품으로는 낭만발레의 대명사인 아돌프 아담의 <지젤>과 류드비히 민쿠스의 <돈기호테> 등이 들어있는데 개관 이후 몇 달간 전석이 매진되었을 정도로 러시아 발레의 전통성과 인기를 한창 구가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러시아 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Uri Grigorovich)가 직접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올리고 있어 큰 관심을 불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은 고전적 전통 속에 볼쇼이 극장이 추구하는 색다른 면모로 가득하다. 다시 말해, 잭 화이트의 <크로마>(Chroma), 톰 빌렌스의 <헤르만 슈메르만>(Herman and Schmerman), 롤랑 페티의 <젊은이와 죽음>과 같은 창작 발레를 상연하며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실험 정신을 덧붙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극장의 홍보 담당을 맞고 있는 스베틀라나(Svetlana)는 새로운 발레와 새로운 무대 연출 속에 러시아 예술의 정통성을 심어 나가는 것이 볼쇼이 극장의 최대의 과제라 부연하였다. 발레에 뒤질세라 오페라 작품 또한 더욱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관객을 찾아가고 있다. 실례로 M.무소르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V.아마데우스의 <마법의 피리>, P.차이코프스키의 <예브게니 오네긴>, J.비제의 <카르멘> 등이 주요 레퍼토리를 차지하며 성황리에 상연되고 있는데, 특히 지휘자 보리스 하이킨과 연출가 올레그 모랄레프가 협업으로 빚어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황제의 신부>(The Tsar's Bride)는 극장 최고의 수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으며 신년 기념 공연으로 선보여지고 있다.

러시아 인형극의 새로운 도약 - 국립 오브라초프 중앙 인형극장

전통이 길어짐에 노련미도 더하더라. 러시아 오브라초프 국립 중앙 인형극장을 두고 한 말이다. 세간의 관객들은 인형극장의 전통에 경의를 표하며 작품 속에 담긴 러시아적 고전미를 인형을 통해 반추하곤 한다. 금년 시즌에 극장의 80회 생일을 맞이함과 동시에 창립자인 세르게이 오브라초프(Sergei Obrazchov)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 인형극장은 레퍼토리 인형극 공연과 함께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중앙 인형극장은 모스크바의 <보로비요비 고리> 지하철역 회랑 내에 대표 레퍼토리 작품인 <돈주앙>, <머저리 주르댕>, <모로슈카>, <실수투성이 코미디>, 푸쉬킨의 <스페이드의 여왕>을 비롯하여 총 9개의 저명한 작품들에 출연했던 40 여개의 인형들을 전시하며 회랑을 지나가는 관객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하고 있다.

특히 금번 시즌에는 아기 사자와 아기 하마 보리의 여행 일기를 줄거리로 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리브쉬츠의 <비밀스런 하마>와 고골의 소설 <지칸카 근교의 야화>를 토대로 만든 <성탄 전야>, <피노키오>, <신데렐라>, 그리고 <곱사등이 망아지> 등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주목받는 점은 연령별로 작품을 나누어 상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3세 이전의 유아들이 볼 수 있는 작품과 5세 미만, 7세 미만의 어린이, 그리고 성인들을 위한 작품까지도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 레퍼토리 수만 하여도 30여 편이 넘는다.

실제로, 인형극에 대한 인식이 남다른 러시아다 보니 정극 수준 이상으로 인형극은 사랑받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형극을 단순히 아동들만을 위한 독자적인 장르라 여길 수 있으나, 이곳 모스크바에서는 전체 연령을 넘나들며 정서적 순화 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그간 오랜 사랑을 받아온 <이례적인 콘서트>와 푸쉬킨의 <작은 비극> 외에도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에서 모티프를 따온 <치치코프를 위한 오케스트라 콘서트>와 초연작인 <위대한 여행:용과 악마, 그리고 영웅>은 탄탄한 문학적 배경 위에 세워진 줄거리를 통해 2012년 시즌 성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자신들만의 고유한 상연철학을 가지고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아동들에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던 오브라초프 중앙 인형극장의 올 한해의 행보도 가히 눈여겨 볼만 하다.



새로운 조류 속에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전통을 잇다 - 모스크바 예술극장

러시아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산증인인 모스크바 예술극장(MAT)은 금번 시즌을 맞이하여 장장 여섯 편에 달하는 초연 작품을 선보이며 2012년 시즌의 문을 활짝 열고 있다. 현재 극장장이자 예술 감독인 러시아의 국민 예술가 올레그 타바코프(Oleg Tavakov)는 예년보다 더욱 더 실험적인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며 다양한 관객층이 극장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극장의 레퍼토리에서 러시아 고전과 현대 서구의 작품의 조화를 이루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 듯, 신작 레퍼토리 가운데에는 아동들을 포함하여 가족 모두가 관람할 수 있는 음악극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1월 1일 초연으로 무대에 오르며,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미하일 쉬슈킨의 <모범 문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건>, 예브게니 그리슈코베츠의 <집>, 장 아누이의 <종달새> 등이 초연으로 상연 된다. 특히 <집>은 중년 남성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러시아의 유명 배우 이고리 졸로토비츠키(Igory Zolotovitzkiy)가 열연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신작 레퍼토리 속에는 현대 작품이 상당히 차지하고 있기에 일각에서는 고전에 대한 약세가 두드러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으나, 안톤 체호프의 장막희곡 <벚나무 밭>과 소설을 각색한 <결투>,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와 같은 주옥같은 러시아 명작들이 자리하고 있기에 수성을 지키고 있는 예술극장의 명성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참고: 국립극장 소식지 <미르> 201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