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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보/러시아 지역소개 및 생활 정보

아듀!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아듀!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러시아 소치 동계 올림픽 현장에 가다

  

 

여명이 밝아오는 소치의 아침은 더없이 상쾌했다. 이른 개발로 우리의 도심에선 들을 수 없었던 갖가지 아름다운 산새 소리가 창 앞까지 가득했으며 군데군데 피어오르는 페치카 굴뚝의 연기는 여염집 아낙의 분주한 일상과 마주하였다. 해안을 따라 즐비한 별장들과 비즈니스 센터가 빼곡히 자리한 신도시 지구와 달리 계곡을 따라 발달한 소치의 안가는 화장기 없는 티 없이 맑은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었다.

지구촌 50억 인구가 하나 되었던 지난 소치 동계 올림픽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기억으로 남겨졌다. 15개 종목과 98개 경기에 금메달을 놓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스포츠 스타들이 대거 참가한 소치 올림픽은 역대 최대 투자금액만큼이나 성대하고 화려하게 개최되었다. 3월 중순에 개최될 예정인 패럴림픽으로 아직 이곳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그야말로 겨울 스포츠 경기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동계 올림픽이었기에 축제가 지나고 난 이후의 쓸쓸함과 허전함은 한 동안 소치 시민들의 마음에 공허함마저 남겼다. 그럼에도 지난 올림픽 기간 중 흥겹고도 박진감 넘쳤던 수많은 일화들이 이들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세계인의 축제 소치 동계 올림픽의 진풍경을 본지를 통해 잠시간 전하고자 한다.

 

 

흑해 문화의 중심지, 소치

소치(Sochi)는 흑해의 해안선을 따라 길게 발달한 전형적인 항구 도시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도시이기도 한 이곳은 좁은 폭에 비해 길이는 장장 148킬로미터에 달한다. 인구라 해야 고작 40만 명에 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오랜 역사 동안 교역과 문화의 중심지이자 소비에트 최대의 휴양지로서 기능해 온 터라 흑해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다.

소치에 도착한 이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거리의 풍경일 것이다. 해변을 어깨 너머에 두고 길게 뻗어난 도로의 양 가로 가지런히 심겨진 가로수는 동계 올림픽과는 사뭇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설산에서 펼쳐질 스키 경기를 방문객들은 머릿속에 그리고 왔을 터인데 이곳 거리의 풍경은 야자수만 없을 뿐, 남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곳곳에 자라난 아열대의 종려나무는 언뜻 보더라도 단숨에 이곳이 겨울과는 거리가 먼 따뜻한 남쪽지방임을 눈치 채게 만든다. 방문객과 지역민들의 복장 또한 점퍼를 걸치고는 있으나 볕이 좋은 낮 동안은 반팔 차림에 거리를 행보하는 이들이 많아 과연 이곳이 어느 절기에 놓여 있는지 한 동안 고심하게 만든다.

이처럼 시원한 초여름 기후에 반해 고산의 설원에서 동계올림픽이 진행된 아이러니한 소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듯, 소치라 하면 러시아에서 가장 따뜻한 휴양지이자 스탈린과 브레즈네프와 같은 과거 소비에트 서기장들이 시베리아의 추위를 피해 피로를 풀고자 즐겨 찾던 곳인데 어찌 이곳에서 동계 올림픽이 가능한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해답은 러시아의 천연 보고 카프카스가 가지고 있었다. 흑해 변에 자리한 소치 시내의 중심부는 한겨울에도 10~15도 가량의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가 이어져 연중 따사로운 날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만년설로 뒤덮인 카프카스의 고산에 자리한 경기장들은 해안의 따뜻한 남국의 정취와는 달리 언제나 폭신한 눈으로 덮여 있어 스키와 스노보드를 비롯한 겨울 스포츠를 진행하기에 더없는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더욱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건설된 첨단 시설들은 혹이나 훈풍으로 눈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경기 내내 최상을 유지하기 위해 만전을 더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은 향후 일반 관광객들이 누릴 훌륭한 자산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환경 파괴와 부실공사로 한때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던 산악 경기장은 앞으로 더 많은 보완과 개발로 남겨진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가며 미래의 소치는 아마도 환()흑해 중심의 첨단 관광단지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크고 작은 진통을 겪으며 완성된 <크라스나야 폴랴나>(Krasnaya Polyana)는 유럽의 이름난 휴양지인 알프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경기장이 있는 아들레르가 소치 올림픽의 메카인 줄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곳이 전부가 아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동계 올림픽의 배턴을 건네받은 소치의 진면목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해안 지구에서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주경기장이 아들레르를 빛내고 있다면 카프카스의 고산에는 숨겨진 또 하나의 보물, 크라스나야 폴랴나가 있다. 카프카스 산맥의 한 자락에 위치한 크라스나야 폴랴나는 그 이름 그대로 붉은 벌판을 의미한다. 러시아어의 붉은이란 단어는 아름다운이란 뜻도 함께 담고 있기에 아름다운 벌판이기도 한 이곳은 겨울 스포츠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러시아 스키어들의 꿈이자 고향인 크라스나야 폴랴나에는 선수들과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크고 작은 리조트들이 건설되어 있었다. 이들 건물은 서유럽 풍으로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었으며 스키 경기를 즐기러 가기 위한 리프트 터미널은 세계 각국의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여유로울 정도로 웅장했다. 또한 산 아래로 불어오는 맑은 공기는 단숨에 청량감을 심어 주었으며 리프트를 타고 수십 여분 산을 오르다보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경기장이 한 눈에 들어오니 신비감마저 감돌았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카프카스 민족의 드높은 기상처럼 눈 덮인 절벽을 스키에 몸을 실을 채 바람을 가르며 하강하고픈 뭇 사내의 낭만을 꿈꾸며 산을 내려왔다.

 

 

세계인의 축제, 동계 올림픽

동계올림픽은 하계 올림픽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다. 이유인 즉, 고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올림픽은 그 발원지가 따뜻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기에 언제라도 경기에 임할 수 있었겠으나 동계 올림픽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정된 몇몇 나라가 아니면 개최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신만은 하계 올림픽과 차이가 없으니, 이 기간만큼은 오색 오륜기 아래 모두가 하나 되기에 그 자체로서 가히 인간이 창조한 경이로운 행사가 아닐 수 없다.

세계인의 축제인 동계 올림픽은 하계 올림픽의 일환으로 1924년부터 시작되었다. 심지어 1908년과 1920년대에는 동계 올림픽의 아이스하키나 피겨 스케이팅과 같은 종목들도 하계 올림픽 기간 중에 함께 열리곤 하였다. 1992년까지 동계 올림픽은 하계가 열리는 해에 동일하게 개최되었는데 1994년부터 변화를 가져 2년의 차이를 두고 열리게 되었다.

최초의 동계 올림픽은 프랑스 샤모니(Chamonix)에서 열렸다. 올해로 22번째 올림픽이 개최될 만큼 동계 올림픽은 그간 꾸준한 성장을 이어오기도 했으나 지난 세기 전쟁의 상처로 인해 한 동안 중단될 운명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가령 동계 올림픽은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긴 시간 동안 침묵의 길을 걸었는데, 전쟁의 상흔이 어느 정도 상처 될 무렵인 1948년에 이르러서야 다시 재개될 수 있었다. 동계 종목에 유럽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 온 터라, 다가올 평창 올림픽을 제외하고 나면 아시아에서는 고작 2차례 밖에 동계 올림픽이 개최된 적이 없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Lillehammer)를 계기로 동계 올림픽은 하계와 별도로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개최 횟수에 따르자면, 미국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의 순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개최되었는데, 2018년에 열릴 제 23회 대한민국 평창 올림픽 또한 소치에서 상당히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Albertville)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10위권 안에 들기 시작했으며, 이후 주력인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그리고 피겨 퀸 김연아가 수성을 지키고 있는 피겨 스케이팅 싱글 부문에서 꾸준히 금메달을 수확하여 왔다. 이후 릴레함메르에서는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 그리고 동메달 1개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6위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동계 올림픽에 대한 저변확대가 아직 국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던 상황인지라 이는 크나큰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꾸준한 성장을 보인 동계올림픽은 이제 소치를 지나 평창으로 향하고 있으며 또 다시 세계인의 꿈과 희망, 범 인류의 조화가 담긴 성화를 피우고자 다가올 4년을 기약하고 있다.

 

 

현대 과학과 예술의 자랑, 인간의 축제 소치 올림픽

소치 동계 올림픽은 지난 200774일 과테말라의 올림픽 총회에서 확정된 지 7년 만에 개최되었다. 53조원이라는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시설비가 투자된 올림픽으로 기록된 소치 올림픽은 하계의 베이징보다 더 많은 금액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수많은 준비를 해온 소치 시민들과 러시아 당국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으로 세계 각국의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한없이 분주했다. 더욱이 냉전 시대였던 1980년에 모스크바에서 하계 올림픽을 개최한 이후 34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었으니 러시아로서는 더없는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소치 시에서 약 20여분 가량 차량으로 이동하다 보면 해안가 조그만 항구와 얼음조각처럼 빛나는 경기장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아들레르(Adler) 피슈트(Fisht) 주경기장이다. 피슈트는 러시아의 소수민족인 아드게야(Adygeya)어로 정상혹은 눈 덮인 봉우리를 의미한다. 첨단 기술과 6천만 달러 이상의 건설비용을 들인 피슈트의 조명은 야간에도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색색의 조명을 뽐내며 주변을 밝혔다. 4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 앞에 우뚝 솟아있는 올림픽 성화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밤낮으로 꺼짐 없이 불을 밝히며 참가 선수들의 기상과 우애를 대신하고 있었으며 올림픽 정신을 매일같이 지켜주고 있었다.

현대 건축 예술의 자랑, 피슈트 경기장 안은 어느 때보다 경비가 삼엄했다. 멀찌감치 마련된 휴대품 검사대를 통과해야지만 축제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체 올림픽 파크를 둘러싸고 길게 펼쳐진 울타리는 내부의 흥겨운 열기를 일찌감치 차단하였는데 그럼에도 세계 각국의 방문객이 자아내는 열정을 막아내는 데는 단연 역부족이었다. 다양한 민족에 대한 소개와 공연, 그리고 풍성한 전통 먹거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축제의 일부가 되게 하였고, 국경을 초월하여 어우러진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간의 우정은 흑해의 해풍을 타고 저 멀리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한국 선수들의 초반 부진으로 우리에게 소치 올림픽은 그리 반갑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 올림픽은 많은 이변과 기록을 낳기도 했다. 가령, 혼성 피겨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러시아 대표 팀의 선전이 이어졌으며 독일과 네덜란드의 철인들은 바이애슬론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눈부신 성적을 과시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열다섯 살 우랄의 소녀 율리야 리프니츠카야(Julia Lipnitskaya)의 활약이 세계 언론을 열광에 빠뜨렸다.

그런 가운데 이번 올림픽 기간 중 가장 주목받은 선수를 고르자면 단연 쇼트트랙의 안현수 선수를 꼽을 수 있다. 러시아 명 빅토르 안(Viktor An)인 안현수는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해 현재 러시아 국가대표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한때 빙상연맹과의 갈등과 심각했던 무릎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두어야한다는 위기까지 경험하였지만 러시아 귀화 이후 꾸준한 관리와 피땀 어린 노력을 통해 당당히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러시아 현지 언론에서는 쇼트트랙 황제의 재림’, ‘왕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안현수의 공적을 치하하였으며, 러시아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딴 기록적인 사건에 대해 연일 대서특필이었다. 그 반면 이상화 선수의 금메달과 심석희 선수의 은메달 소식 이후 한 동안 잠잠했던 한국의 빙상 계에는 침통한 분위기가 연속되었다. 이후 쇼트트랙 여자 릴레이에서 값진 금을 차지하며 대표 팀은 그 동안의 침체를 잠시나마 씻어낼 수 있었으며, 빙판을 시원스레 가르며 혼신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 선수의 무결점 경기가 큰 위로가 되었다.

뜻밖의 부상과 부진으로 이번 올림픽은 우리를 다소 쓸쓸하게 만들었으나 메달이 전부는 아닌 법. 4년간 오로지 올림픽만 바라보고 열심히 땀을 흘린 선수들의 노고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수에게 있어 금메달보다 더 값진 것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그들이 흘린 한 방울 한 방울의 땀이 우리에게는 금메달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우리의 손으로 그들의 목에 마음의 금메달을 선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네 고유한 신비스러움을 잘 간직한 평창에서 다시 한 번 올림픽의 영광스런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한국 선수들의 끊임없는 선전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