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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예술과 문화

그림으로 본 러시아의 말의 이야기

 

그림으로 본 러시아의 말의 이야기

러시아 역사 속 명마들을 찾아가다

 

 

청마(靑馬)의 해 갑오년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축제를 치른 정초의 들뜬 분위기는 점차 고요 속에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갓 지난 명절을 뒤로 하고 모두가 새로운 한해를 뜻있게 보내고자 말처럼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별스레 뒤늦게 찾아온 겨울의 추위는 년 초부터 내내 적응하지 못할 낯선 온기로 러시아인들의 마음을 녹여 놓더니 이제야 제 모습을 한걸음씩 찾아가고 있다. 러시아어로 손나야 지마’(Sonnaya zima)라 불리는 지금과 같은 날씨는 마치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하다는 의미에서 온난하고 흐린 겨울을 의미하곤 한다. 이런 탓에 겨울 스포츠를 즐기고자 했던 많은 이들은 더없이 차가운 날씨가 이어지길 매일같이 갈망하고 있다.

말의 해를 접하며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러시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말과 더없이 깊은 인연을 간직한 곳이라 하겠다. 넓은 영토와 긴 역사만큼이나 말에 관한 진기한 일화들이 셀 수 없을 만큼 풍성한데, 그 중 전 러시아에 잘 알려진 명마들에 관한 몇몇 이야기를 본지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인간의 세상을 노래한 홀스토메르(Kholstomer)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말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드네프르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 공국인 키예프 루스(Kiev Rus)에서는 농경사회가 정착됨과 동시에 소, 말과 같은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했으며 남과 북에서 침략해오는 이민족들을 막기 위한 수단이자 일상의 필수로 말을 여겼다. 그러다 보니 보다 훌륭한 말을 얻고자 하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레 생겨났다. 지난 세기 유라시아 평원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진 크고 작은 전쟁들 또한 말과 함께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하였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공(馬公)에 대한 의존성이 강했다.

가령 2차 대전 당시 혹독한 추위로 인해 물자 수송이 원활하지 못했던 러시아 군은 말을 통해 전장으로 보급품을 추진하기도 하였으며, 더욱이 러시아 남부와 중부에 자리한 카프카스와 우랄, 알타이 지역은 차량으로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였기에 더욱 더 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러시아 문학에서도 말의 흔적은 쉽게 찾아진다. 19세기 최고의 소설가라 불리는 레프 톨스토이는 작품 <홀스토메르>에서 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사를 조명했다. 경마에서 연이어 승리한 이후 한 때 생의 최고의 영예를 누린 명마 홀스토메르였지만 결국 인간으로 인해 자신의 명성과 건강을 순식간에 잃고 세속에서 잊혀져가며, 그저 한 마리의 병들고 초라한 노마(老馬)가 되어 옛 주인과 재회한다는 소설의 줄거리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금세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말을 의인화하여 우리네의 삶을 들여다 본 희대의 명작 <홀스토메르>는 연출가 마르크 로조프스키가 <말의 이야기>로 개작하여 아직도 무대에 올리고 있으며, 소비에트 최초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이라는 명성답게 관객들의 진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말은 일상 속에서 결코 뗄 수 없는 진솔한 벗과 같은 존재로 러시아인들의 마음속에 담겨 있다.

 

 

전설의 명마, 아칼테케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타들어가는 뙤약볕은 괴기스럽도록 건조하고도 날카로운 황색 돌풍과 짝을 이루어 굵은 모래알을 사방으로 튕기고 있었으며 발 디딤조차 부자연스런 카라쿰(Karakum)의 모래 융단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지평선 너머로 잡힐 듯 말 듯 흐린 시야를 유혹하는 신기루를 자아낸다. 의지할 것이란 가늘고 긴 다리에 짧은 털을 결대로 빗어 넘긴 종마 한 마리. 마치 곱게 화장한 신부의 얼굴을 떠올리듯 미끈히 잘생긴 회백의 긴 얼굴은 지침을 모른 채 앞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아칼테케! 투르크멘의 별이여, 영혼이여, 사랑이여! 사막은 너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사막의 별> 가운데 -

 

 

아칼테케(Akhal-Teke)는 구 소비에트 남부에 위치한 투르크메니스탄을 출신지로 하는 종으로서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투르크메니스탄 인들에게 아칼테케란 국보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 이유로 국가를 상징하는 엠블럼에도 아칼테케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다시 말해, 아칼테케는 곧 사막 인들의 자긍심이자 자존심이다. 귀족 혈로 통하는 영국의 말들과 비교하여도 역사적 기원에서 앞서는 이 종은 약 5천 년 전부터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 자생하였다 한다. 카라쿰 사막의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아남았던 아칼테케의 조상은 영하 30도에서 영상 50도에 이르는 큰 온도 차이에도 몸을 지탱할 수 있었을 만큼 강인함을 지녔다. 또한 전쟁 중 상처를 입은 몸으로 두어 명의 병사를 등에 업고 기수도 없이 푹푹 빠지는 사막에서 거친 모래 바람을 뚫고 무사히 본진으로 복귀한 사래들이 전해져 오고 있어 아칼테케의 인내력은 이미 오래 전에 검증되었다.

비단 러시아뿐만 아니라 동양의 역사에서도 이 말에 대한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나라의 무제(武帝)는 한 마리의 명마를 얻기 위해 전쟁까지 불사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야기인 즉,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인 서역의 대완에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 명마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무제가 그 말을 쟁취하고자 자신의 대군을 보냈다는 것이다. 무제를 매혹에 빠뜨린 말은 그 빠르기가 가히 다른 말들과 비교하지 못할 바였으며 심지어 뛰고 난 뒤에는 붉은 색의 땀을 흘린다고 하여 한혈마(汗血馬)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많은 전문가들이 이 말의 종을 바로 아칼테케라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1935년 소비에트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드(Ashkhabad)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장장 430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랠리가 행해졌는데 이 때 참가한 말들은 오직 아칼테케 뿐이었다. 랠리는 거의 84일간이나 이어졌으며 물도 없는 사막을 가로지르며 여정은 계속되었다. 오로지 안장에 앉아 거침없이 나아갈 뿐 말 외에 다른 이동수단의 도움이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랠리는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으며 참가대원들은 무사히 모스크바에 입성할 수 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모든 것이 아칼테케의 강인한 인내가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시도조차 불가능하였을 것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승마용으로도 명성이 널리 알려진 아칼테케는 타고난 강인함과 뛰어난 스피드로 세계의 수많은 말 애호가들이 한번쯤 승마를 해 보았으면 하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오아시스 아할(Akhal)이 있는 아칼테케 지역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 이 종은 경주 및 승마, 그리고 사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 체고가 약 160센티미터 가량 되는 아칼테케는 현재 순혈로 따졌을 때 약 3500여 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칼테케 가운데 으뜸을 가리자면 단연 카즈벡(Kazvek)과 압센트(Absent)를 뽑을 수 있다. 아랍(Arab)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카즈벡은 당대 최고의 명마로 칭송받았는데 이 말은 승마 대회에서 2미터 12센티미터를 뛰어넘은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슈하바드-모스크바 랠리에서도 카즈벡은 성공적인 완주를 뒷받침했다. 소비에트 시절 카즈벡의 후손들은 투르크메니스탄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에서도 전문적으로 길러졌으며, 러시아 남부에 위치한 말 전문 사육장에서도 이 말의 순수 혈통을 보존하고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한다.

 

 

카즈벡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9456월 붉은 광장에서 거행된 기념식에도 참가하였다. 승전 장수인 주코프 장군이 스탈린 앞에서 기념 퍼레이드와 사열을 지휘하며 탔던 명마가 바로 이 말인데, 이렇게 당대 명성을 날리던 카즈벡과 바카라(Vakara)라는 암말 사이에 태어난 종마가 전설로 길이 남은 압센트이다. 아버지의 명성을 이어 압센트는 아칼테케 종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압센트는 챔피언의 영예를 안게 되었고 당시 비독일계통의 말로서는 유일하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독일산 경주용 혹은 승마용 말의 피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유일한 챔피언이라는 역사적인 사례를 남겼다.

여기에 그칠세라 압센트는 유럽 챔피언을 비롯하여 전 소비에트 챔피언 등 승승작구의 길을 걸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는 세르게이 필라토프와 호흡을 맞추어 소비에트 대표로 참가해 동메달을 획득했고,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이반 클리타의 안장 아래 자국 대표 팀에게 은메달을 안겼다고 한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루고프스키(Lugovsky) 말 목장에 가면 압센트의 동상이 세워져있으며 그의 공헌 덕분에 아칼테케 종은 변함없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사하의 보물, 사하 아타

전 세계에 걸쳐 약 207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말은 사역을 목적으로 일찍부터 인간들의 손에 길들여졌다. 그들 중 뼛속까지 시린 냉기와 함께 살아가는 특별한 종이 있으니 바로 러시아 사하 공화국(Sakha Republic)사하 아타’(Sakha Ata)이다. 지구상의 주() 가운데 가장 큰 영토를 자랑하는 사하 공화국은 우리가 상상 속에 그리는 모습 그대로의 시베리아 겨울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야쿠티아(Yakutia)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남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의 국경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으로는 북극해에 이르기까지 전체 면적이 3083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실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 가운데 수도 야쿠트스크와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극한지역이거나 험준한 산맥으로 되어있어 야생의 자연을 보다 잘 간직한 땅이기도 하다. 이런 자연 환경을 품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말의 필요성이란 어느 곳보다 컸다.

 

 

사하 지역의 토착종인 사하 아타는 일명 야쿠트 말로도 불리는데, 이 종은 지구상 최북단에 사는 말들로 알려져 있다. 거의 대부분이 북극권 일대의 라프체프 해와 동시베리아 해로 유입되는 야나(Yana), 콜리마(Kolima), 인디기르카(Indigirka) 강의 북방 하구에 서식하고 있으며 동쪽의 마가단 지역으로 흘러가는 레나(Lena) 강변에서 무리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일부는 세계에서 가장 춥다는 베로호얀스크 인근에 방목되고 있는데 영하 50-6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에도 야외에서 살며 눈과 얼음 아래의 풀을 뜯으며 지낸다 하니 그 내한성이 실로 대단하다. 특히 다리와 목을 수북이 덮고 있는 긴 털과 갈기는 겨울에 체온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며 야생에서 뛰어노는 말무리 떼의 역동적인 모습을 더욱 멋있게 표현하곤 한다.

마치 아리따운 처녀의 머릿결 같이 아름답고 긴 머리칼을 자랑하는 야쿠티야 말은 아칼테케와 달리 15센티미터에 달하는 긴 털을 가지고 있다. 개개의 우두머리들은 통상 18마리에서 24마리에 이르는 자신의 무리를 가지고 있다. 몽고말과도 자주 비교되나 이 종은 키가 훨씬 크고 몸집이 더 육중하다. 얼핏 보기에는 노새와 같이 크고 짧은 머리가 약간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으나 이곳에서는 전천후로 통하며 강인하기에는 더 이상 따라갈 말이 없다. 오늘 날 야쿠티아 지역에는 남과 북으로 나뉘는 서식지에 따라 세 부류로 말을 구분한다고 하는데,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지역민들의 삶 속에서 오래 동안 변함없이 큰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오래 동안 인류와 함께 살아왔으면서도 본연의 개성을 잃지 않은 야쿠츠크 말은 일 년 내내 숲에서 무리를 이루며 마구간으로 들어오지 않는 실로 야생에 가까운 종이다. 여타의 말과 달리 암말을 놓고 경쟁하는 수말들도 한쪽이 피를 흘리고 쓰러질 때까지 경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큰 머리에 비해 어깨 높이가 고작 140-150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종이지만 그가 가진 굵은 목과 탄탄한 가슴, 그리고 짧지만 지구력이 강한 다리는 혹독한 북방의 겨울을 잘 극복하며 살아가게 해준다. 그럼에도 인간에게 만큼은 지극히 온순하다 하니 사하 아타는 야쿠티아 인들의 오랜 벗이자 삶의 반려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처럼 사하 지방에서도 말은 특별하고도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의 전설을 유심히 살펴보면 금방 이러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세계를 창조할 때 신은 심지어 말을 먼저 만든 후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또한 인간의 힘으로나 차량으로 이동하기 힘든 지형이 많다 보니 이곳에서는 어려서부터 말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말을 잘 다룰 수밖에 없었으며 태어남과 동시에 말과 벗이 된다는 혹자의 말이 결코 이곳에서는 낯설지가 않다.

아마도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상 말 또한 그들의 곁에서 이제껏 그러하였듯 공생과 공존을 이어갈 것이다.